[포커스뷰] 외국인들 '귀신같은 타이밍'…한발 앞서 주식매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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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외국인들의 주식매매는 그야말로 절묘한 시기에 이뤄지고 있다.

외국 신용평가사들의 한국 신용등급 조정이나 대우 구조조정 발표 등 시장을 흔들만한 재료가 있기 15~20일 전부터 집중적으로 주식을 사고 판 것이다. 날고 긴다는 국내 펀드매니저조차 외국인들의 타이밍 포착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 언제 사고 팔았나〓지난 1월 외국인들은 4일 3천8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25일까지 무려 1조8백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25일은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인 BB+에서 적격인 BBB-로 올린 날이다. 외국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무디스가 등급을 올린 2월 12일까지 2천억원어치의 주식을 더 사들였다. 이 기간 중 국내기관들은 무려 1조3천9백68억원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버렸다.

대우 구조조정이 발표된 7월 19일 전후 상황은 한술 더 뜬다. 당시 시장에서는 대우 구조조정 소문이 파다했지만 국내 기관들은 7월 6~19일 사이에 무려 2조2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같은 기간 1조원어치의 주식을 처분했다. 1, 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주가지수도 이 시기를 정점으로 등락을 거듭하면서 800대로 미끄러졌다.

지난달 주가가 800대 후반에서 1, 000포인트까지 곧장 올라갈 때도 외국인들의 매수는 돋보였다. 지난달 4~10일 외국인들은 6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10일 S&P는 한국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고, 당시 시장 분위기는 '그래서 샀구나' 하는 식이었다. 이 기간 중 국내기관 순매수는 7백36억원에 불과했다.

◇ 개인투자자들은 어땠나〓11월에는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지만 다른 기간에는 대체로 사고 파는 시점만큼은 외국인과 비슷했다. 그러나 종목을 들여다 보면 전혀 얘기가 다르다.

지난 1월 4~25일간 외국인들은 한국전기통신공사.삼성전자.주택은행 등을 대거 사들였지만 개인들은 같은 종목을 오히려 팔았다. 외국인 대량 매매가 일어난 시점에서 거의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결국 외국인들의 사고 파는 시점만 중시했지 종목 연구는 소홀히 한 채 외국인들이 던지는 주식을 덥석 받아 간 셈이다.

◇ 외국인들 왜 빠른가〓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큰 돈을 굴리는 만큼 굵직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다는 분석이다.

이옥성(李玉成) 엥도수에즈WI카증권 서울지점장은 "미국의 큰 기관투자가들은 확실히 국제적인 정보에 빠르다" 며 "신용등급 상향조정 등의 정보는 이들 큰 고객이 먼저 알고 주문을 낸 경험을 여러번 했다" 고 밝혔다.

또 다른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의 이름있는 기관투자가의 펀드매니저들이 정부 고위 관료나 유력 연구기관의 박사들을 만나겠다고 약속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며 "대부분 별 거리낌없이 만나준다" 고 말했다.

물론 직접 고급정보를 주지야 않겠지만 대화과정에서 궁금한 것을 묻게 되고 우회적인 답변이나마 듣게 되면 뛰어난 분석능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관의 사장조차 정부 관료가 불러주어야 만나는 상황과는 딴판이다.

쟈딘플레밍증권 서울지점 김영근(金永根)이사는 "국내기관들은 환매부담 때문에 정보를 얻고도 주식을 못사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크레디리요네증권 허의도(許義道)이사는 "외국계 펀드매니저들이 국내 기업 최고 경영자(CEO)와 빈번하게 교류하며 주주 자격으로 투자조언도 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 내용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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