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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도전현장-중국] '메디인 차이나' 이젠 질로 승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 산골마을에서의 일이다.
한 주민이 세탁기 구입을 원한다는 것을 안 세탁기회사가 그에게 특별배달을 결정했다.
그러나 운반차량이 도중에 고장이 났다.

배달직원은 75㎏이나 되는 세탁기를 등에 지고 2시간을 걸어 물건을 건넸다.
중국의 라오반(老板.상점주인)들이 종업원에게 서비스정신을 강조할 때면 어김없이 드는 사례다.

화제의 회사는 '하이얼(海爾)' .
지난달 말 하이얼의 본사가 위치한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를 찾았다.
"직원들에게 두가지를 말하죠. '당신의 상사는 내가 아닌 시장(市場)이고 월급을 주는 사람도 내가 아닌 고객이다. 당신의 제품.서비스가 나쁘면 시장과 고객이 외면하지 않겠는가' 라고요" . 장루이민(張瑞敏.50)하이얼 총재의 설명이다.

15년 전 1백47만위안(약 2억원)의 손실을 내고 파산위기에 몰렸던 하이얼이 매출액 2백억위안을 꿈꾸는 중국 최대의 백색가전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같은 종업원의 의식개조에서 출발했다.
중국 시장에서 3위 밖으?밀릴 경우 그 제품의 생산을 중단해버리는 하이얼은 냉장고.세탁기 등 42개 주요품목에서 8천6백종을 생산한다.

"하이얼은 중국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가격이 아니라 품질로 승부하고 있습니다" (유키오 쇼토쿠 미쓰비시 중국지사장). "하이얼의 애프터서비스는 두려움마저 일으킵니다" (삼성 칭다오 판사처의 申基俊대표). "장쩌민(江澤民)주석이 칭다오에 오면 꼭 하이얼에 들르지요" (칭다오 한국총영사관 全鎣洙총영사).
하이얼은 99년을 '국제화 원년' 으로 정하고 21세기 세계 시장 공략을 선포, 세계 가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왜 세계가 긴장하는가.
하이얼은 사실 후진국보다 선진국에 더 알려져 있다.
'선난후이(先難後易)' .먼저 어려운 선진국 시장부터 뚫고 다음에 개도국을 공략한다는 張총재의 전략 때문이다.

하이얼은 93년 독일 시장을 돌파했고 이젠 미국과 일본을 공략 중이다.
미국의 경우 36~1백80ℓ급 소형냉장고 시장의 20%를 하이얼이 차지했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중국 냉장고의 60%도 하이얼이다.
미국 뉴욕5번가엔 하이얼 영업소가, 로스앤젤레스에는 디자인 본부가 있다.
올해 7월부터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연산 20만대의 냉장고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세계가 저임금을 노리고 중국으로 몰려드는 판에 하이얼은 오히려 임금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하이얼의 세계 시장 공략은 곧 미국의 하이얼, 세계의 하이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독자적 브랜드 구축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중화파이(中華牌.메이드 인 차이나) 하이얼' 로 세계를 제압하겠다는 생각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세우기 위한 하이얼의 노력은 철두철미하다.
회사 앞 6㎞ 거리의 작명권을 칭다오 시정부로부터 50년 기한으로 사들여 '하이얼루(路)' 로 이름지었을 정도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대표적 중화파이를 꿈꾸는 중국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란 사실이다.
지난 8월 2일 제4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네덜란드 아인흔의 경기장 안팎은 온통 한문 물결을 이뤘다.
50만달러를 찬조해 이 대회 스폰서가 된 톈진(天津)의 의류회사 다웨이(大維)를 비롯, 솽위(雙魚).훙솽시(紅雙喜).왕차오(王朝)등 중국 스포츠 회사들이 대회광고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이 국제스포츠대회의 최대 스폰서가 되긴 이번이 처음. 중화파이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중국 기업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8월 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스포츠용품 박람회에선 중국 체조스타 리닝(李寧)이 세운 스포츠용품사 '리닝' 이 아디다스.나이키 등과 겨룰 '세계의 리닝' 을 건설하겠다고 선포했다.

베이징(北京)최대 체인점인 톈커룽(天客隆)그룹은 지난 2월 모스크바에 건평 6천11㎡의 대형 매장을 설치했다.
중국이 해외에 처음 개설한 이 매장엔 배갈(白酒)을 파는 훙싱파이(紅星牌)와 침구용품 전문의 싱푸파이(幸福牌), 인삼판매의 쭝퉁파이(總統牌)등 중국회사들이 대거 진출했다.

뿐만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 스포츠음료 업체인 젠리바오(健力寶). 20개국에 수출하는 이 회사는 젠리바오를 코카콜라에 못지않은 대표적 중화파이로 키우기 위해 미국에만 1천만달러를 쏟아부었다.
미국에 거액의 수재의연금을 내는가 하면 젠리바오 골프대회까지 개최하고 있다.
앞으로 5천만~1억달러를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만 쓰겠다는 계획이다.

중화파이의 이미지 구축엔 중국인 특유의 애국심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경제일보(經濟日報)는 1면 톱으로 '찬란한 민족의 브랜드' 라는 제하에 생산량이 올해 1백만t을 돌파할 베이징의 '옌징(燕京)맥주' 를 보도했다.
세계 맥주회사 20강에 끼기 위한 옌징의 분투가 기사의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저가로 버텨냈다. 그러나 이제부턴 품질이다. 1등 제품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중국 기업인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쑨인구이(孫寅貴) 바이룽(百龍)녹색과학기술소 그룹 총재는 '중국제품〓싸구려.저질' 이라는 등식을 깨자는 결의가 기업인들 사이에 충만하다고 설명한다.

덩샤오핑(鄧小平)도 일찍이 "민족공업이 없고 일등상품이 없으면 그 나라의 전도는 없는 것과 같다" 면서 1등 상품을 강조한 바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2005년께 중국의 무역액이 98년의 두배인 6천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도 2000~2010년엔 7.9%, 2010~2020년엔 6.6%의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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