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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 맞게 말해야 제대로 동시통역… 한·영 완성도 60%, 한·일은 98%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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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호 20면

우리나라 벤처기업 CSLI에서 내놓은 안드로이드폰용 자동통역기. 한-일, 한-영 통역기능을 가지고 있다.출시 한 달 반 만에 다운로드수 25만 회를 기록했다.

“어디서 택시를 탈 수 있습니까” “Where can I get a taxi?”
“택시를 불러주십시오.” “Please call a taxi.”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Where are you now?”
“성함과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십시오” “May I have your name and phone number, please.”
“곧 택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I will soon send a taxi.”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온 자동통역기

여행용 영어회화책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다. 기자가 25일 회사 책상에서 스마트폰인 아이폰과 갤럭시S에 있는 자동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실제로 이용해 본 결과다. 자동통역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공상과학(SF) 영화 속의 얘기가 아니다. 일부 부유층이나 특정 계층의 얘기도, 수퍼컴퓨터를 운영하는 과학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외국어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최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포함, 전세계적으로 27종의 스마트폰용 자동통역 애플리케이션이 나와 있다. 아직까지 한계는 있다. 소음이 적은 곳에서 분명한 발음으로 얘기해야 한다. 말하는 문장이 문법에 맞아야 하고 단문 위주의 길지 않은 문장이라야 한다.

갤럭시S 등 안드로이드 계열의 스마트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동통역 애플리케이션은 국내 벤처기업 CSLI(www.cslimc.com)가 만든 ‘통역비서’다. 지난해 12월 26일 출시된 이 애플리케이션은 ‘한국어-영어’ ‘한국어-일어’를 자동통역해준다. 갤럭시탭에는 한-중 자동통역 기능까지 추가했다. 일주일 동안 무료로 쓸 수 있고, 이후엔 월 2500원을 내야 하는 조건이지만 출시 이후 최근까지 한 달 반 사이 다운로드 수가 25만에 달했다. 자체 평가에 따르면 한-일 자동통역 기술은 98%, 한-영 자동통역 기술은 60%의 완성도를 보인다.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에 올라온 ‘사용 후기’도 긍정적이다. “잠깐 테스트해봤는데 꽤 정확도가 높아서 놀랐습니다.” “어제 일본에서 바이어가 와서 저녁식사 하면서 이 통역앱으로 이야기했는데 아주 좋아하더군요.” “미국 출장 갔을 때 사용해 봤는데 정말 신기하게 잘 되네요.”
물론 부정적인 사용후기도 있다. “사실 영어통역은 많이 아쉽습니다.” “외국인이랑 대화할 때 썼다가 망신당할 뻔ㅜㅜ.”

미래기술로만 알았던 자동통역 기술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났을까. CSLI는 1992년부터 한-일 번역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온 창신소프트를 모태로 하고 있다. 그간 한-일 번역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연구해온 외국어 번역기술에다 미국의 IT 공룡 구글이 최근 무료로 공개한 음성인식 기술이 합쳐지면서 통역비서가 세상에 나왔다. 특히 CSLI의 한-일 통·번역기술은 완성도가 높아서 일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CSLI 김동필 이사는 “일본의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사인 소니에릭슨이 지난해 12월 전 세계 27개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심사해 통역비서를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애플의 아이폰용 자동통역기도 있다. 미국의 IT 기업인 모바일테크놀로지(www.jibbigo.com)가 내놓은 ‘지비고(Jibbigo)’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지비고는 영어와 중국어·일본어·타갈로그어·스페인어·독일어·프랑스어·이라크어·한국어 등 9개 국어 자동통역이 가능하다. 지난해 11월엔 안드로이드폰용 지비고도 나왔다. 아이폰용 영어-한국어 통역서비스는 지난달 27일 출시된 신제품이다. 언어별로 애플리케이션이 나눠져 있어 원하는 언어별로 24.99달러의 다운로드 비용을 내야 한다. 자동통역의 완성도는 우리나라 통역비서처럼 언어별로 차이가 크다. 말의 뿌리가 같은 영어-스페인어는 상당한 완성도를 보이지만, 영어-한국어 기능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
기자가 지비고 입력기에 대고 “집에는 언제 가죠?”라고 말하자 한글 인식은 완벽하게 됐다. 하지만 영어로 나온 말은 “When are we going to take it home?(우리는 언제 그것을 집으로 가져갑니까?)”이었다.

통역비서와 지비고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통역비서는 통신 네트워크가 있어야 하지만, 지비고는 네트워크와는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용이라는 점이다. 지비고를 내놓은 모바일테크놀로지는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자동 통·번역을 연구해온 앨릭스 와이벨 교수가 창업한 기업이다. 그는 이미 2005년 스페인어와 영어·프랑스어·태국어를 통역하는 기기와 SW를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이다.

세계 자동 통·번역업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도 수준 높은 기술을 보유한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현재 홈페이지 번역 코너에서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 59개 국어 번역 서비스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자동통역 기능의 큰 축 중 하나인 음성인식 기술도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했다. 올해 들어 애플과 안드로이드폰용 자동통역 애플리케이션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은 지난달 27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영어-스페인어’ 음성인식 자동통역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조만간 출시될 구글의 음성인식 자동통역기가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인류사에 진정한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애플과 안드로이드폰용으로 내놓은 애플리케이션도 정식으로 출시한 것이 아니며, 시험판인 소위 ‘베타 버전’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IT관련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내년 초를 목표로 여행·관광용 자동통역기 상용화 연구에 본격적으로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2008년 3월부터 한-영 자동통역 기술개발을 목표로 ETRI에 연간 약 20억원씩 연구자금을 지원하면서부터다. 지난 2005년 ‘특허문서 한-영 자동번역 상용화’와 2008년 단말기용 40만 단어 음성인식 상용화 연구가 마무리된 것이 바탕이 됐다.

ETRI는 지난 23일 연구소를 찾은 기자에게 기술개발 중인 스마트폰용 한-영 자동통역기를 보여줬다. 서버와 연결된 네트워크 기반형은 물론, 통신서비스가 없는 곳에서도 단말기 만으로도 자동통역 기능이 발휘되는 단말기형 두 가지를 모두 개발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마이크 모양이 나타날 때 간단한 여행용 문장을 말하니 영어로 번역된 젊은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글·지비고의 통역기와 비교해봤지만 손색이 없었다.

ETRI는 내년 초까지 한-영 자동통역에서 5만 단어급 이상의 통역률 95%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한국어-일어, 내년부터는 한국어-중국어 자동통역 기술개발도 시작할 계획이다.ETRI 자동통역팀 박준 선임연구원은 “선진국의 통·번역 기술에만 의지하게 되면 우리나라 말의 자동통역에 대한 기술 및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라며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자동통역에 필요한 음성인식과 번역, 음성조합 기술을 개발한다는데 연구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한-영 자동통역 부문에서는 구글의 기술력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ETRI의 자동통역기 기술개발 역사는 짧지 않다. 1991년 정부(체신부)가 자동통역기술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ETRI에 처음으로 자동통역연구실이 만들어졌다. 95년엔 세계 자동통역기술협회라고 할 수 있는 C-STAR에 가입해 기술 교류를 하고, 99년엔 한국어·영어·일본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등 6개국 언어 간 국제 실시간 자동통역기술을 공동 개발했다. 하지만 이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정부예산이 급감하면서 자동통역기 연구도 사실상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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