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쇠의 대화 보여준 이우환 ,위대한 예술가이자 철학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7호 03면

1 쒝From Line…(1977), Glue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182 x 227줢 / The Nati 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 Photo: Ni c Tenwiggenhorn, sseldorf 2 쒝Relatum-suggestion…(2005), Steel plate 2 x 280 x 240줢, Stone, 120줢 high / Collection of the artist, Kamakura, Japan / Installation view: Lee Ufan Museum, Naoshima, Japan, 2010 /Photo: Tadasu Yamamoto

맨해튼 센트럴 파크 옆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은 뉴욕의 명소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1959년 완공한, 돌돌 말린 태엽의 강철을 아래로 눌러놓은 듯한 하얀 건물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안으로 들어가 로비에서 고개를 쳐들면 유리 천장을 통해 하늘이 보인다. 경사진 복도를 따라 빙글빙글 내려가거나 올라가며 작품을 감상하는 독특한 구조로 돼 있다.

6월 이우환 전관 전시 준비하는 구겐하임 관장 암스트롱과 수석 큐레이터 먼로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 철강계의 거물 사업가 솔로몬 구겐하임(1861~1949)의 현대 미술 소장품을 토대로 37년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비대상회화 미술관(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이라고 불렸지만 59년 새 건물을 만들면서 이름도 바꿨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현재 뉴욕을 비롯해 스페인 빌바오, 이탈리아 베네치아, 독일 베를린 등 4곳에 있다. 2013년에는 아부다비에도 오픈할 예정이다. 미술관 운영은 구겐하임 재단이 맡고 있다. 리처드 암스트롱은 구겐하임 재단의 이사장이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관장이다. 알렉산드라 먼로는 아시아 예술 담당 삼성 시니어 큐레이터다(삼성이 2010년부터 아시아 관련 예술펀드를 제공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번 이우환 전관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두 사람을 9일 맨해튼 허드슨가의 구겐하임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정신(experimental spirit)이다. 이미 알려진 가치보다 알려져 있지 않은 가치를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초기부터 초현실주의나 추상주의 작품을 많이 모았다. 선구자적 예술가들이야말로 우리의 아이덴티티와 잘 들어맞는다.”

-뉴욕의 다른 현대 미술관과는 어떻게 차별화하고 있나.
“휘트니 뮤지엄의 경우 미국 작가의 작품만 다루는 곳이다. 뉴욕 근대미술관(MoMA)은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만큼 실험적 시도를 할 수 없다. MoMA가 제너럴하다면 우리는 래디컬하다고나 할까. MoMA가 백과사전처럼 두루 펼쳐놓는다면 우리는 깊이 파고든다. 한 작가의 작품을 사도 MoMA가 한 점 산다면 우리는 다섯 점을 산다. 실험성과 깊이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3 Sol 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Photo: David M. Heald ?The Sol omon R. Guggenheim Foundati on, New York 4 Sol 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Installati on vi ew: RUSSIA!, 2005 Photo: David M. Heald ?The Sol omon R. Guggenheim Foundati on, New York 5 Solomon R. Guggenheim Museum Restoration Completion, Photograph by David Heald,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전관 전시는 쉽지 않은 시도다.
“우리의 공간은 독특하기 때문에 웬만한 작가로서는 공간을 장악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매우 강한 퍼스낼러티가 요구된다. 아티스트로선 엄청난 도전이다. 1년에 1명, 많아야 2명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도 어떤 작가가 해야 전시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인지 고심한다. 요제프 보이스, 매슈 바니, 클래스 올덴버그 같은 컨템퍼러리 마스터들이 전관 전시를 했다.”

-아시아 작가들은.
“한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2000년에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전관 전시를 했다. 화약을 사용하는 작가로 유명한 중국의 차이궈창이 그 뒤를 이었다. 이우환은 아시아 작가로는 세 번째다. 미국에서 처음 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6월 24일부터 9월 28일까지 열린다. 드로잉·페인팅·조각 등 90여 점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새로 만든 작품은.
“한 점 있다. 196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작품 세계를 두루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작품을 모았다.”

-이우환 화백을 선정한 이유는.
“그는 위대한 아티스트이자 철학자다. 미니멀리즘 그리고 포스트 미니멀리즘에서 그의 작품과 글은 매우 독보적이다. 그는 이미 한국과 일본·유럽에서는 유명하다. 미국 전시가 이제야 열린다는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왜 미국 소개가 늦었나.
“그는 주로 일본과 유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소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미국 밖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 바깥 세계의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데 매우 느리다. 하지만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적기라고 생각한다.”

-2009년 구겐하임에서 열린 ‘아시아 미술이 미국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 전시가 화제였다.
“그 전시는 10년간 기획한 것이다. 미국은 대서양 국가이면서 태평양 국가이기도 하다. 사실 아시안 아트가 미국 문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20세기 들어 아시아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면서 더욱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판화, 중국의 불상, 인디언 만델라 등. 존재에 관해 묻는 불교 철학의 영향도 크다. 미국에는 이민자가 많은데, 이런 전시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미국 사회로서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2009년 전시가 미국 작가의 시각에서 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본 것이라면, 이번 이우환 전은 아시아 작가의 시선을 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다.”

-이우환은 어떤 작가라고 보나.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식민지배 시절 조선의 어린이로서 아웃사이더였고, 젊어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할 때도 아웃사이더였다. 유럽으로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다 넘어섰다. 그리고 다 받아들였다. 그의 고향(home)은 그의 마음(mind)이었다. 고독은 그를 외롭게 했지만 그의 예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아웃사이더로서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일본에서 공부한 그는 어떤 면에서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이다. 시적 전통에 충실하다. 그는 다양한 철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사조를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해냈다. 2009년 아시아전 때 했던 모든 것이 이우환 전에 녹아 있다. 그가 공부한 역사와 철학을 꿰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모노하’에는 그의 철학이 녹아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의 설치 작품인 돌덩어리와 철판을 보자. 쇠(스틸)는 산업을 뜻하고 도시와 빌딩을 상징한다. 반면 돌은 자연이다. 이우환은 그 둘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들의 대화를 보여준다. 이것은 매우 컨셉추얼하고 다이내믹하다. 많은 미국 관람객들의 에고에 충격을 줄 것이다. 외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작품 외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험을 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다.”

-전시회 부제가 ‘무한을 표시하다(Marking Infinity)’다.
“작가에게 예술 작품이란 관객과 사물, 시간, 장소의 현상학적 만남이다. 이 순간 무한의 영역이 열리며 자아가 없는, 무(無)의 상태로 되는 것이다. 작가의 회화 작품과 조각 작품이 만들어 내는 공간에서 관람객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대화’ ‘조응’ 등 그의 시리즈를 고루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어떻게 진행됐나.
“한국국제교류재단, 일본국제교류기금, 더 카펜터 파운데이션, 삼성 등이 지원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아시아 예술 분과는 언제 만들어졌나.
“2006년 발족됐다.”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미술과 일본 미술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
“일본 미술은 무의식적이다. 시적이고 다양한 함의가 있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전체적으로는 강하고 어둡다. 반면 한국 예술은 보다 직접적이다. 의문을 남기지 않는다. 숨겨진 어젠다가 없다. 현재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수준은 놀랍다. 매우 잘 교육받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구현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대담하고 정직하며 자신감에 차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