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북한의 ‘동지’ 와 ‘오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김영호씨는 3년 전 대한민국에 왔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남조선 드라마 미치광이였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나쁜 여자들’ ‘선녀와 사기꾼’ ‘달마야 놀자’ 같은 한국산뿐 아니라 ‘007’ ‘미녀 삼총사’ ‘취권’ ‘무술왕 방세옥’ 등 중국·미국·러시아의 영화·드라마도 많이 보았다고 했다. ‘장군의 아들’ ‘투 캅스’ ‘깡패수업’처럼 특히 인기가 높은 영화를 담은 ‘CD 알판’은 장마당에서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김씨는 “남조선 영상물을 통해 북한 내 대학이나 어디서도 배우지 못한 고귀한 경험을 했다”며 “나에게는 희망의 빛이었다”고 증언했다.

 그제 오후 서울시청 옆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0층에서 ‘소셜미디어 바람, 북한에도 가능한가’라는 부제를 단 ‘북한 주민 정보접근권 증진방안 공청회’가 열렸다. 거센 민주화 폭풍이 튀니지·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를 휩쓸고 있는 시점이라 청중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러나 지구상 최악의 정보통제 국가에서 ‘M(모바일) 혁명’이란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외부에서 유입된 영상물이 급속히 유포되자 북한 당국은 올해 초 ‘130 상무’라는 특별 검열조직까지 만들어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각종 모바일 기기가 얼마나 통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김씨가 든 작은 예는 북한 사회도 결국엔 어디에선가부터 물꼬가 트이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남한 드라마에 익숙해진 북한의 젊은 여성들이 사귀는 남성을 “영철 동지” 대신 “영철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랑해” “자기야” 등 이전에는 입에 담지 않았던 남한식 용어도 자주 들린다는 것이다.

 ‘동지’가 ‘오빠’로 바뀌었다 해서 북한의 체제도 따라 변하리라 믿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거나 착각일지 모른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남한에 대한 팩트, 있는 그대로의 정보가 북한에서 생각보다 많이 유통된다는 점이다. 난관과 곡절이 있더라도 이런 흐름은 당위이자 선(善)이다. 게다가 정보의 자유로운 취득과 전파, 의사표현의 자유를 담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는 북한도 이미 가입해 있다. 우리가 과거 1960~70년대처럼 체제 선전을 앞세울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면 된다. 북한 주민이 듣고 보고 생각할 계기만 만들어주면 된다. 혹시 북한에서 ‘오빠’가 ‘나빠’로, 나아가 ‘바꿔’로 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공청회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기됐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우리 국민이 거의 듣지 않는 AM라디오 주파수 대역을 회수해 대북방송에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AM은 FM에 비해 멀리 송출되므로 거의 북한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열린북한방송은 지난해 5월부터 춘천MBC와 협약을 맺고 매일 새벽 4~5시에 AM·FM 라디오 방송을 북한에 보내고 있다.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이 싱가포르에서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관람한 사실도 이 방송을 통해 북한 땅에 흘러들었다. 하 대표는 “라디오는 특히 북한의 지식인층 매니어 청취자가 많다”며 “경수로 터가 있는 함경남도 신포에서도 방송을 듣는다”고 말했다. “지상파 DMB는 시청료가 공짜이니 유휴 휴대전화를 북한에 많이 보내 시청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문제는 역시 정부·정치권의 관심이다. 민간 대북방송은 미 국무부 지원금과 영국의 상업 주파수에 의존하고 있다. 대북민간단체를 지원할 북한인권법안도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언제 통과될지 모르는 실정이다. 그나마 국가인권위가 이런 행사를 열게 된 게 반가운 변화라면 변화다. 공청회에서 증언한 또 다른 탈북 인사인 장진성 시인도 말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북한 인권에 무관심한 인권위여서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늘 공청회를 계기로 처음으로 인권위가 여기인지 알게 됐습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