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탈선 12일 만에 …] 이번엔 열차 정전사고 … 나사 풀린 코레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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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산 간 경의선 철도가 서울역에서 고장으로 멈춰 서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사진은 문산 차량기지로 견인된 열차와 동일 기종으로 팬터그래프(원 안)가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김태성 기자]

23일 오전 서울~문산 구간을 오가는 전동차가 서울역에서 고장을 일으켜 운행이 1시간30분가량 중단되면서 큰 혼잡이 빚어졌다.

사고 열차는 승객 200여 명을 태운 채 8시25분에 서울역을 출발하기 위해 플랫폼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당시 사고차에 탔던 승객들은 “열차의 지붕 위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펑’ 소리와 함께 열차의 모든 전기가 꺼졌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사고는 출근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러시아워에 발생하면서 경의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사고 열차는 현장에서 복구되지 않아 문산 차량기지로 견인됐다.

 코레일은 이날 사고가 발생한 지 한참이 지나서도 정확한 사고 원인을 찾지 못했다. 김흥성 대변인은 “정비 불량이나 차량의 심각한 결함은 아닐 것”이라며 “정확한 사고 원인은 문산 차량기지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철도 전문가들은 열차가 전기를 공급받는 팬터그래프(집전장치)의 결함 가능성을 지적했다. 철도기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열차 지붕 위 전선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고 객차의 모든 전기가 갑자기 나간 걸로 봐서 팬터그래프 결함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

 승객을 태운 채 운행에 투입된 코레일 열차의 사고는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를 기록했다. 11일에는 광명역에서 KTX 개통 7년 만에 첫 탈선사고가 발생했다. 또 21일엔 경인선 인천행 열차가 종로3가역부터 종각역까지 출입문 한 개를 연 채로 운행했다. 이 구간은 인파가 붐비는 혼잡한 곳이어서 승객이 자칫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사고였다. 서울역 사고 열차에 탑승했던 한 승객은 “한 달 내내 사고를 내다니 코레일의 너트가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코레일 내부에서는 차량과 시설 등에 대한 안전점검 주기를 연장한 것이 잇따른 사고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KTX 등 열차가 노후화할수록 검수 횟수를 늘려야 하는데 코레일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지난해 8월부터 전기나 신호, 차량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는 검수 횟수를 줄였다.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팬터그래프 등에 대한 전기 분야의 검수는 2주에 한 번씩 하던 것을 한 달에 한 번씩만 하고 있다.

 코레일 노조는 “정원 감축 뒤 시설 정비나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허준영 사장 부임 후 유지보수 체제 변경의 후유증이 크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허 사장 부임 후 정원 1만5000여 명 가운데 5100여 명을 감축했다. 특히 정원 감축 대상의 60%가 전기나 신호·선로를 유지보수하는 현장 담당자들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이들을 감축한 뒤 시설 유지보수를 외주나 위탁관리하고 있지만 철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철도기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코레일의 최근 사고는 신호체계, 운전, 전기 등 원인이 다양하다”며 “코레일이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에 빠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글=장정훈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팬터그래프=열차는 동력의 형태에 따라 증기·디젤·전기차(전동차) 등으로 구분한다. 팬터그래프는 전기로 움직이는 KTX나 지하철 같은 전동차가 선로 위에 설치된 2만5000V의 전력선과 접촉하면서 전기를 공급받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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