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주현 기자의 시시각각] 핫도그 드림

미주중앙

입력

비번이던 어느 토요일, 신나는 마음으로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우연찮게 취재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지인이 운영하는 핫도그 집이 오늘 폐점하는데 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성황이라 취재거리로 재미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주말은 소중하다’가 철칙이지만 구미가 당겼다. 한인이 핫도그 집을 운영한다는 것이 재밌기도 했고 한편으론 ‘한정판’ 핫도그 맛을 보고 싶은 욕심에 발길을 돌렸다.

사이먼-아그네스 정씨 부부가 운영하는 리버 포레스트 ‘애니스 비프’는 가게 문 앞까지 들어선 차들과 빼곡히 서있는 손님들 때문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안은 더 복잡했다. 손님들이 건넨 화분과 카드가 가득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메뉴판부터 벽에 걸린 야구팀 사진 속 자신까지 모두 사진기에 담았다. 폐점 소식이 알려지면서 ‘애니스 비프’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타지역에서 달려온 손님도 허다했다.

3명 중 2명은 사장 손을 잡고 “보고싶을 거다”, “내 아이들이 여기서 자랐다”며 일일이 인사 나누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돌아서질 못했다. 40분을 기다려 가장 인기 많다는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사는데 성공했다.

쉽게 무너지는 한인 스몰 비즈니스가 많은 지금, 현지 사회를 대상으로 장수한 비결이 뭘까. 궁금한 마음에 다음 날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정 씨 부부를 다시 찾았다. 정 씨 부부는 다른 한인 이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76년 이민와 노스브룩 등 좋은 학군을 찾아다니며 자녀들을 양육했다. 시카고에서 가발 소매상과 그로서리를 차례로 운영하다가 우연히 신문을 보고 ‘애니스 비프’를 인수하게 됐다. 5년 전부터 손님이 줄었고 지난해 말 특히 타격을 받은 데다 렌트비 인상이 겹치면서 은퇴를 결정했다.

‘애니스 비프’의 가장 큰 원동력은 지역 주민들과의 끈끈한 관계에 있었다. 초등학교와 성당이 건너편에 위치해 단골이 많았다. 지역 야구단에 8년간 꾸준히 후원했고 할로윈 같은 날에는 성당에 핫도그를 돌렸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꼽는 것은 부부의 온화한 성격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핫도그가 아니라 정을 건넸다. 사람이 끊이지 않는 ‘지역 주민 센터’로 불리면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늘었다.
30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팔면서 쌓은 신뢰감도 큰 역할을 했다.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간판들과 프랜차이즈화에 질린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는 맛과 80년대의 인테리어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기자가 고향을 생각하면 단골 스타벅스보다 시장 뒷골목에서 아주머니 혼자 손으로 국수를 말아주던 가게가 그리운 것과 같은 심정이 아닐까.

은퇴한 정 씨 부부는 손녀를 보며, 옥튼 칼리지에서 영어 수업을 들으며, 밴으로 여행을 다니며 지낼 계획이다. 사이먼 정 씨는 “가게가 팔리고 말고는 중요치 않다. 35년 이민생활 동안 1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24시간을 부부가 함께 있었다. 가족의 의미를 강조하면 살았다는 점에서 이민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취재를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이 ‘더 낳은 삶’을 위해 이민왔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정 씨 부부가 얼마의 부를 쌓았는 지는 중요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두 사람의 26년을 축복하고 기억하면서 부부는 아메리칸 드림보다 소중한 보람을 찾았다. 이민생활에 정답은 없지만 명답은 있다. 26년 후 일터를 떠날 때 진심으로 박수쳐 줄 한 사람이 있는지, 미국으로 오며 추구했던 ‘더 낳은 삶’의 답을 제대로 써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시카고=김주현 기자kjoohyun@koreadaily.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