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밑도는 전기료 … 한전 ‘적자의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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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총리가 지난달 17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직원들에게 원활한 전력 공급을 당부하고 있다. 계속된 한파로 이날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정현 기자]<사진크게보기>


‘전기 복지’가 녹색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를 기업·가계가 펑펑 나눠 쓰는 게 원인이다. 전기는 녹색에너지가 아니라 적색에너지다. 현재 생산되는 전력 중 67%가 화석연료를 연료로 사용해 만들어진다. 특히 겨울이나 여름에 급증하는 전력수요는 모두 화석연료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화석연료 사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정한경 선임연구위원은 10일 열린 토론회에서 “지난해 10월까지 국내 총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해 2년 연속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웃돌았다”며 “산업규모가 커지는 데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에너지를 쓰고 온실가스도 더 배출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력 사용량은 더 심각하다. 2002년 이후 9년 동안 2006년을 빼고는 모두 전력 사용 증가율이 GDP 성장률을 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 격차가 2%포인트 이상으로 더 커졌다.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왔다. 이 때문에 석유 등 다른 에너지가격에 비해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싸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석유가격의 129.6%였던 국내 전력가격 비율은 2009년에는 83.3%까지 떨어졌다.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싸지자 소비자들은 불편한 석탄이나 석유난로를 치우고 너도나도 전기난로를 들여놓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정한경 위원은 “전기요금 10% 인상을 미뤄 얻는 경제적 이익은 크지 않지만 그에 따른 비효율은 엄청나다”며 “서민들을 위한다면 차라리 전기요금을 올리고 등유비를 보조해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냉난방용 전기수요의 급증은 또 다른 낭비를 부른다. 지난달 13일 최대전력수요는 7314만㎾를 기록해 예비전력량이 404만㎾까지 떨어졌다. 블랙아웃(광범위한 지역의 정전사태) 위험까지 제기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충분한 예비전력을 확보하려면 원전 2기 정도를 더 지어야 한다. 4조2000억원가량의 추가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처럼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1년 중 한 달 남짓 정도밖에 안 된다. 전열기 사용만 줄여도 이런 문제가 안 생긴다. 한전 관계자는 “1년 중 한두 달을 위해 4조원 이상의 투자를 하는 것은 대표적인 낭비”라고 지적했다.

 다른 부문에 비해 훨씬 싼값에 전기를 쓰고 있는 산업부문도 심각하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일본의 절반, OECD 평균의 25% 수준이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인 시멘트·철강·섬유산업도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 남짓”이라며 “이런 특혜가 지속되니까 효율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최현철·임미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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