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감시 잘해야 일류시민 된다 ② 홍보관, 치적만 내세우다 애물단지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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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와 공기업들의 홍보관은 세금 낭비의 또 다른 현장이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인 홍보관은 겉만 화려할 뿐 정작 찾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만 들어가면 알 수 있는 내용을 단순 나열하거나, 시장·군수 치적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식 홍보’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일단 짓고 보자’=부산 뉴타운 홍보관은 영도구 신선1동의 언덕 위에 서 있다. 취재진이 찾은 지난달 초, 취재팀은 이날의 유일한 관람객이었다.

28억원(건축비) 부산 뉴타운홍보관(1630㎡) 1일 방문객 10명 이하


 2층 전시실 벽엔 각종 패널과 뉴타운 모형도가 있다. 모니터 전원은 꺼져 있다. 상영시설을 갖춘 100명 규모의 회의실도 텅 비었다. 이창호 관장은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라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총선 직후인 2008년 4월 말에 홍보관이 들어섰다. 지상 3층, 총면적 1630㎡ 규모다. 홍보관이 외진 곳에 들어선 이유가 뭘까. 시 관계자는 “영도가 지역구인 김형오 의원(당시 국회의장)이 힘을 써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전 의장은 홍보관 개관식에서 “영도구에 뉴타운을 가져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최근에는 관람객이 1명도 없는 날이 적지 않다. 신선 1동에 25년째 살고 있는 김모(53)씨는 “총선을 앞두고 뚝딱 짓더니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아 쓸모없게 돼버렸다”며 혀를 찼다. 영도구 의회 권혁 의원은 “홍보관 용도로 지어진 가건물이라 전용도 못한다”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예산만 빼먹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또 “이런 낭비가 쌓여 LH의 거대한 부실로 이어진 것 아니냐”며 “무책임한 공기업과 지역구 의원의 한건주의가 맞물리면서 세금만 잡아먹었다”고 개탄했다.

◆“미실현 이익 선납 종용”=남양주시 별내지구 개발을 맡은 LH는 2007년 추정 개발이익금의 절반인 200억원을 시 발전기금으로 납부하겠다는 양해각서(MOU)를 시 정부와 체결했다. 남양주시는 “이 돈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4950㎡ 규모의 도시 홍보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개발이 본격화되지도 않았는데 LH는 왜 ‘자발적으로’ 미실현 이익금의 절반을 납부하겠다고 했을까. 익명을 요구한 한 남양주시 관계자는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이석우 시장이 힘을 쓴 것으로 안다”며 “그렇지 않다면 LH가 먼저 돈을 내겠다고 할 리가 있겠나”고 반문했다.

 시는 200억원 가운데 18억원을 우선 받았다. 이 가운데 6000만원은 시장과 공무원 등 8명이 두바이 견학을 하는 데 썼다. 나머지는 설계비·업무추진비로 들어갔다. 시 관계자는 “18억원 중 9억원 정도가 남아 있다”며 “(홍보관에) 교통관제시스템도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주장했다.

 시의회 이광호 부의장은 “예산 집행에는 우선순위가 있다”며 “노인복지관 등 꼭 필요한 시설을 제쳐두고 홍보관부터 지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개발이익금을 시 발전기금으로 헌납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무리하게 이익금을 추산해 선납받은 것은 문제다. 예산 집행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물은 수십억원, 콘텐트는 엉성=2009년 11월 부산시는 62억5000만원을 들여 강서구 생곡쓰레기매립장에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을 체험할 수 있는 홍보관을 세웠다. 지상 3층, 연면적 2748㎡ 규모다.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달 4일 오후, 전시실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때만 불을 켠다는 것이 홍보관 측의 설명이다. 에너지 절약이 그 이유다. 2층 체험관엔 체험시설이 전무하다. 책상과 의자만 있다. 3층은 직원 체력단련실이다. 부산시 이성숙 의원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전시 내용도 부실해 체험시설로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30억원을 들여 지은 디자인플라자 홍보관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홍보관 건립이 급하다는 이유로 수의계약했다. 서울 시정을 홍보하고 동대문운동장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부착물과 터치 스크린이 전부다. 콘텐트가 부실해 찾는 사람은 하루 10여 명에 불과하다.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서울 톨게이트 바로 앞에 4만1708㎡ 부지에 하이패스 홍보센터가 있다. 톨게이트 확장을 위해 403억원을 들여 매입했지만 사업이 중단됐다. 공사는 다시 10억원을 들여 이 홍보센터를 지었다. 합계 330㎡ 남짓한 두 개의 건물은 화장실과 편의점, 홍보관, 하이패스 카드 구입 및 충전시설로 사용 중이다. 건물 한쪽에 있는 30㎡ 규모의 홍보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불필요한 땅을 구입하고 거기에 불필요한 건물까지 짓는 ‘이중 낭비’를 한 것이다. 강기갑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홍보관이 필요했다면 인근에 두 개나 있는 기존 휴게소 공간을 활용하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뜰살뜰 홍보관 vs 흥청망청 홍보관

양주시청 600만원 홍보관, 효과는 수십억

주민 찾아가는 조립식

“옮기고 조립하는 데 힘은 들어요. 하지만 효과만큼은 수십억원짜리 홍보관보다 월등하죠.”

 경기도 양주시청 김순길 홍보기획팀장은 600만원 들인 조립식 홍보관을 이렇게 소개했다. “앉아서 기다리는 건 옛날 얘기예요. 이젠 직접 찾아가는 게 홍보의 기본입니다.”

 김 팀장의 홍보 철학이다. 양주시는 자체 홍보시설이 없다. 대신 지난해부터 ‘찾아가는 홍보관’을 운영 중이다. 장비는 간단하다. 홍보 패널과 몇 대의 모니터를 구비한 수준이다. 이를 트럭에 싣고 가서 조립하면 어엿한 홍보관이 탄생한다. 홍보 효과는 만점이다. 홍보기획팀 김민주씨는 “지난해 가을 관내 읍·면·동 단위 체육대회가 있는 곳마다 선을 보였다”며 “매번 수백~수천 명의 시민들이 관람했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찾아가는 홍보관’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각 지자체가 번듯한 홍보관을 앞다퉈 건설하자 양주시도 고민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소한 수억원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재정 자립도가 40%를 밑도는 양주시로서는 무리였다. 결국 홍보물을 자체 제작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동 홍보관은 지난해 10월, 수원에서 열린 경기축산페스티벌에 첫선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관내 다른 행사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본전의 수십 배, 수백 배의 홍보 효과를 본 셈이다. 양주시는 패널을 더욱 다양하게 꾸미고, 빌려 쓰던 대형 천막도 마련하기로 했다. 추가 예산은 720만원이다. 텅텅 빈 일반 홍보관의 한 달 운영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연제구청 2억 홍보관, 하루 20명도 안 와

주민 외면 받는 호화판

동아리 회비 3만원을 냈다고 하자.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다. 회비유용이 드러난다면? 분노하고, 질책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수입의 5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세금에 대해선 대다수가 무감각하다. 용처에 관심도 없다. 내 세금으로 이뤄진 작은 편의를 ‘혜택’으로 느낄 뿐이다.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분노의 대상이 우리 옆에 있는 시·도 홍보관이다. 성남시 홍보관은 825㎡ 넓이에 9개의 전시공간이 들어있다. 건립 예산은 26억원. 호화청사 논란이 일었던 청사 내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반면 콘텐트는 밋밋하다. 시정 방향이나 현황·역사가 전부다. 방문객이 거의 없는 날도 적지 않다. 신임 시장 취임 이후 시 홍보관이 첫 개혁 대상이 된 이유다. 윤기천 시 홍보담당관은 “홍보관을 시민들의 문화·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청북도는 2007년 도청 1층에 9억1500만원을 들여 601㎡ 규모의 홍보관을 열었다. 의회는 예산낭비라며 반대했지만 도는 설치를 강행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관람객은 민원인을 포함, 하루 평균 30여 명이 고작이었다. 결국 신임 이시종 지사는 “도정홍보관을 폐지하라”고 지시해 즉시 폐쇄됐다. 도의회 김영주 의원은 “단체장의 홍보성 사업으로 예산을 삭감했는데도 추경예산에 반영해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수억원의 세금이 낭비됐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했다.

 용인시 신청사 1층에 514㎡ 규모의 홍보·전시 공간이 있다. 13억원을 들였지만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부산 연제구도 2009년 구청 1층에 2억원의 예산을 들여 홍보관을 마련했지만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20명에 못 미친다. 부산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지자체가 일만 잘하면 자연스럽게 홍보가 될 것”이라며 “홍보관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은 시장·군수의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말했다.

◆탐사부문=진세근·이승녕·고성표·권근영·남형석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사진=김상선 기자, 프리랜서 신승철

◆공동기획=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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