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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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사는 검은 도미는 10cm 크기까지는 수놈으로 있다가 20cm가 되는 두 세 살이 되면 암수양성이 된다. 산란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 검은 도미는 다시 한가지 성별을 가지게 된다고 하니 참 편리한 전이가 아닐 수 없다.

난데없는 생선타령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경찰서를 털어라〉의 주인공이 바로 이런 도미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본래의 직업은 도둑이면서 오직 경찰서를 터는 목적 달성을 위해 주인공은 도둑과 형사라는 이중직업을 가진다. 도둑으로 남을 것인지 형사로 남을 것인지는 목적달성 후 결정된다.

240억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던 마일즈 로건(마틴 로렌스)은 동료 디컨(피터 그린)의 배신으로 체포된다. 그 와중에도 마일즈는 옆 건물의 통풍구에 다이아몬드를 숨겨놓는 데 성공한다. 2년 후, 다이아몬드를 되찾을 꿈에 부풀어 출소한 그에게 닥친 또 하나의 불행. 아이러니컬하게도 건물에는 LA 경찰서가 들어 서 있었다.

신분을 위장해 경찰서에 잠입하려던 마일즈는 우연히 도망치는 용의자를 체포하면서 형사반장(그래함 베클)의 신임을 얻게 된다.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광석화처럼 절도 사건을 해결하는 마일즈. 그의 솜씨에 파트너인 초보 형사 칼슨(르크 윌근)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마일즈의 노력은 계속되지만 보석은 오리무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거의 동료 털리(데이브 채펄)가 편의점을 터는 현장에 출동하게 된 마일즈는 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처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동양의 고사성어는 현대판 미국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초능력자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노련한 형사라 해도 도둑의 전략을 도둑보다 잘 알기는 힘들 터. 마일즈가 최고의 형사가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일즈 형사(?)는 〈비버리힐스 캅〉과 〈리셀 웨폰〉의 주인공을 합쳐 놓은 듯한 캐릭터다. 한시도 쉬지 않는 수다스러운 입담과 유머감각은 에디 머피를 닮았고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와 행동력은 멜 깁슨을 연상시킨다. P31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오히려 질문자의 답변을 유도하고 31을 좋아하면 베스킨 라빈스나 가보라는 멘트로 위기를 넘기는 그는 재치도 9단이다(P31은 LA 경찰서에서 쓰는 총이다).

마일즈 역의 마틴 로렌스는 이런 캐릭터의 개성을 십분 살린다. 국내에선 같이 출연했던 윌 스미스와 팀 로빈스의 그늘에 가려 별다른 인지를 얻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코미디 배우로 입지를 굳힌 상태. 마틴은 분풀이라도 하듯 파트너인 피터 그린을 버려둔 채 홀로 빛을 발한다. 특히, 경찰서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수선스런 피자 배달원으로 분하는 그의 변신은 눈여겨볼 만 하다.

영화는 1시간 반 남짓한 시간동안 시종일관 시청자의 시청자의 웃음을 가차없이 유발한다. 거대자본을 들인 할리우드 영화답게 액션 장면도 꽤 볼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영화자체는 심심한 감이 있다. 그 문제는 바로 평범함.

〈경찰서를 털어라〉는 전형적인 코믹 액션영화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형사의 탈을 쓴 도둑이라는 소재 외에 특별한 새로움은 없다. 계속되는 반전도 관객의 예상을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줄줄이 시리즈로 나오는 캅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도 낯설음을 느끼긴 어려울 듯. 그저 마일즈의 마지막 전이를 기다리면서 생각 없이 웃다보면 영화의 해피엔딩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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