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오랑캐’의 천하통일 예언한 김종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심양에 있는 청 태종의 무덤 소릉(昭陵). 병자호란 직후 시강원(侍講院) 관원으로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갔던 김종일은 청의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청이 장차 명을 물리치고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이 생각건대 아주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오랑캐의 성품은 몹시 탐욕스러운데 피난하는 사람들의 화물을 절대로 약탈하지 않고, 또 그 항오(行伍)도 아주 정제되어 있습니다. 전마(戰馬)는 멀리서 왔음에도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으니 매우 괴이쩍습니다. 그들이 하는 바를 볼 때 흉특함이 이와 같으니 아마 다른 사정이 있는 듯합니다.” 1636년 12월, 서울을 점령했던 청군 행렬을 목도했던 윤휘(尹暉·1571~1644)의 이야기다.

 “청의 정치를 보면 간결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검박하면서도 다함이 있다오. 무릇 백성들 가운데 한 살이 넘은 사람과 소와 양과 낙타와 말들은 모두 빠짐없이 장적(帳籍)에 올라 있소. 군대를 다스리는 것은 엄하고 백성들을 대하는 것은 관대하오. 관리를 임명할 때는 오직 그가 하는 바를 보고 하니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자질구레하고 번잡하여 기강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소. 이런즉 그들을 천하무적이라 일컬을 수도 있을 것이니 그들이 천하를 얻지 못한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1639년 김종일(金宗一·1597~1675)이 했던 예언이다.

 윤휘의 청에 대한 인식은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지녔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청은 오랑캐’이고 ‘오랑캐는 본래 탐욕스럽고 기강이 없기 때문에 남의 물건을 약탈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오랑캐’가 약탈도 하지 않고 대오도 정제되어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김종일은 병자호란 직후 심양에 파견되어 소현세자를 보좌했던 인물이다. 그는 청 장수 용골대와 결탁하여 비리를 자행한 역관 정명수(鄭命壽)를 고발했다가 죽음을 겨우 면하고 조선으로 추방되었다. 귀국 후 영해(寧海)로 유배되었는데 위의 예언은 당시 영해현령 조정호(趙廷虎)에게 했던 것이다. ‘오랑캐의 소굴’ 심양에 파견되어 곤욕을 치렀던 그의 청에 대한 인식은 객관적이다. 김종일은 건전하고 기강이 잡혀 있던 청의 정치와 사회 현실을 긍정한다. 동시에 조선과 명이 청을 ‘오랑캐’라고 멸시하지만 실제로는 청에 비해 정령이 번잡하고 기강이 잡혀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김종일은 나아가 자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청이 장차 명을 제압하고 중원을 제패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청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했던 김종일의 혜안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청을 계속 ‘오랑캐’라고 규정했다. 100년이 더 지나 북학(北學)이 등장하고서야 청을 보는 눈이 교정된다. 바야흐로 중국이 G2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 우리는 중국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고 있는가?

한명기 명지대 교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