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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작곡한 마이클 나이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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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영화음악이란 음악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영화의 줄거리에 맞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물론 듣기에도 편해야 한다. 나는 굵은 글씨를 휘갈기는 것보다 '음악 벽지(壁紙) ' 를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영화음악 사운드트랙 앨범을 단 한 장도 구입한 적이 없으면서도 영화음악 '피아노' (감독 제인 캠피언.94년) 로 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마이클 나이먼(55.얼굴) 의 말이다.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에 환멸을 느껴 바로크 시대의 영국 작곡가 퍼셀과 헨델의 악보를 연구하면서 루마니아에서 민요를 채집하기도 했다.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한 그는 68년 '스펙테이터' 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현대음악에서 '미니멀리즘' 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미니멀리즘이란 스티브 라이히.필립 글래스.존 애덤스 등 단순한 패턴의 반복을 당연시하는 음악을 가리키는 말. 74년 나이먼이 '실험음악:존 케이지와 그 이후' 라는 저서를 내놓았을 때 자신이 '그 이후' 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국 국립극단의 음악감독 해리슨 버트위슬의 권유로 베네치아 곤돌라 뱃사공의 노래 편곡을 맡으면서 만든 앙상블이 그가 이끄는 '마이클 나이먼 밴드' 의 효시. 기존의 음악을 해체해 전혀 현대적 감각을 살린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82년) 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84' 의 2악장을 재구성한 것. 특유의 강렬한 선율과 리듬으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복잡미묘한 여성의 심리를 피아노 선율로 섬세하게 묘사한 페미니즘 영화 '피아노' (94년) 에서 여주인공 미혼모 아다의 테마는 스코틀랜드 민요에서 따온 것.

그는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고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으로 패션쇼.컴퓨터 게임을 위한 음악도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서 남의 작품도 과감히 인용했는데 그를 가리켜 보수적인 음악인들은 '기생충' 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피아노' 의 사운드트랙(EMI) 은 콘서트용으로 개작된 '피아노 협주곡' (데카) 으로도 출시됐으며,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의 '캐링턴' (95년) 에 흐르는 선율은 '현악4중주 제3번' 의 소재로 사용됐다.

97년 마츠다 자동차의 광고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는 '첼로와 색소폰을 위한 2중 협주곡' 을 위촉받은데 이어 할리우드 진출작인 SF영화 '가타카' (97년) 의 음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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