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3형제, 한의사 시험 차례로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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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왼쪽부터 이번에 합격한 박태현씨와 형 수현씨, 동생 세현씨. [연합뉴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3형제가 차례로 한의사 시험에 합격했다. 북한에서의 학력이나 경력을 인정받아 의사·한의사가 된 경우는 있지만 탈북 3형제가 모두 한의사 자격을 따낸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기도 성남에서 묘향산한의원을 운영 중인 박수현(45)씨와 두 동생들. 최근 발표된 한의사 국가고시 합격자 명단에 셋째인 태현(40)씨가 올랐다. 넷째인 막내 세현(35)씨가 2009년 한의사가 된 지 2년 만의 경사다.

 3형제 한의사의 첫 단추는 4형제 중 둘째인 수현씨가 10년 전에 뀄다. 북한에서 청진의과대학 고려의학부(한약학과)에 다니다 1993년 10월 탈북한 수현씨는 95년 3월 경희대 한의예과 2학년에 편입했다. 하지만 한의학 교육 수준의 극심한 차이 등으로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최대 복병은 한자였다. 북한에서는 한자를 잘 쓰지 않는 바람에 한자투성이인 남한의 한의학 공부는 옥편과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수현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본과 4학년 재학 중이던 2001년 한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수현씨는 동생 세현·태현씨를 차례로 한국에 오게 해 한의학 공부를 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내인 세현씨는 세번의 시험 끝에 2009년 국가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셋째 태현씨도 지난해까지 2차례 연거푸 낙방한 뒤에 이번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태현씨는 “발표 전에는 3∼4일간 잠이 안 오더니 합격자 발표 후에는 기뻐서 또 잠을 자지 못했다”고 웃음을 보였다. 수현씨도 “동생이 합격했다니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았다”면서 “하늘을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고 기뻐했다.

 이들 3형제의 한의사 시험 합격은 수현씨가 지난해 2월 탈북자로서는 최초로 한의학 박사 학위를 따낸 이후여서 기쁨을 더해주었다. 수현 씨는 요즘 영어 공부에 열심이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를 받고 싶어서 10년 계획으로 공부 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하는 모든 일이 어렵고 하루 이틀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탈북자들에게 조언했다.

 3형제 한의사 탄생을 가장 반갑게 접한 사람은 99년 한국에 온 부모다. 아들의 탈북 이후 산골로 추방돼 굶어죽을 고비까지 넘겼다는 아버지 박상운(73)씨는 “이젠 근심이 없다. 아들들 덕분에 오래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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