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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없는 성취가 무슨 의미 있을까…주말엔 쉬자, 자연 속으로 들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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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제약 김광호 사장이 집무실에서 아령 운동을 하고 있다. [보령제약 제공]

최근 CEO의 건강문제가 화두다. CEO가 건강악화로 쓰러지면 경영이 흔들리고, 외부 평판도 추락한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지난 17일 병가를 내자 주가는 독일 증시에서 6.2% 급락했다. 시가총액으로 220억 달러가 날아갔다. CEO의 건강이 기업의 핵심 자산인 셈이다. CEO라면 함부로 아파서도 안 된다. 바쁜 스케줄과 과중한 업무부담 속에서도 성공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CEO 건강법’을 알아보자.

보령제약 김광호(64) 사장. 제약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뛰어든 그는 꼭 사장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야근은 밥 먹듯이 했고 주말이면 집이 곧 사무실이었다. 꼼꼼한 완벽주의자에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그는 초고속으로 승진해 41세에 전무를 달았다.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했지만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몰랐어요. 사장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렸습니다.” 결국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42세에 위암 판정을 받았다. 유전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가 도화선이 됐다.

 위 절제수술을 받고 2년간 미국에서 파견근무를 하며 자신과 가정을 처음으로 되돌아봤다. 김광호 사장은 그제야 삶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바쁘게 회의를 하더라도 소리 높이지 않고 말을 천천히 부드럽게 했다. 매일 아침 팔굽혀펴기와 아령 들기, 태권도, 명상의 시간도 가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화를 내는 대신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는 “성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성공만 쫓아가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긍정의 힘일까. 그는 당시 부사장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연매출을 10년 만에 45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올려놨다. 결국 2005년 꿈에 그리던 사장 자리에 올랐다.

 햇볕 가까이 … 음악으로 긴장 풀도록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집무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신체활동을 깨울 수 있다. 우선 집무실 조명을 밝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그림이나 사진·장식을 둔다. 방에는 햇볕이 들어오고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는 게 좋다. 햇볕은 중년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D를 생성할 뿐 아니라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분비돼 행복한 감정이 든다.

 창밖에 숲이나 나무가 보이면 금상첨화다. 녹색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혈압과 맥박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식물의 녹색자극은 뇌의 언어·기억·정서 기능을 활성화한다. 숲이 보이는 위치에 입원한 환자가 벽만 바라보는 환자보다 수술 후 진통제 사용량이 적고 퇴원이 빨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녹색 풍경이 없다면 실내 식물을 키워보자.

 음악과 친구가 되면 감정조절에 도움이 된다. 심장박동과 호흡·뇌파 등 생체리듬은 본능적으로 음악에 맞춰 공명하기 때문이다. 빠른 음악은 처진 기분을 신나게, 느린 음악은 긴장을 완화한다. 음악은 또 기억력과 사고력에 관여하는 전두엽을 자극해 집중력을 높인다. 이탈리아 피렌체대학교 피에스트로 모데스티 박사팀이 51~76세의 고혈압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한 달간 매일 30분씩 느린 음악을 들려주고 호흡조절을 병행한 결과 이완기 혈압이 평균 4㎜Hg 낮아졌다.

잠 부족하면 면역력·대뇌기능 떨어져

CEO는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한다. 6시간 내외로 자되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 게 좋다. 깊은 잠(난렘)과 얕은 잠(렘)이 반복하는 게 수면이다. 깊은 잠에 빠져야 뇌가 휴식을 취하고 기억력이 좋아진다.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생체리듬이 곧바로 깊은 수면인 난렘 단계에 들어간다. 잠을 설치면 면역력과 대뇌 기능이 떨어진다.

 수면과 함께 건강의 2대 수칙은 운동이다. 하지만 바빠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CEO가 많다. 역으로 운동을 위해 일정한 시간을 비워놓는 게 방법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나로 박사는 해외출장이 잦은 일정에도 매일 2~3시간씩 달리기와 자전거타기를 빼먹지 않는다.

 여유가 없다면 일상에서 틈틈이 운동한다. 서울대 의대 신경과장 전범석 교수는 연구실에 운동기구를 두고 휴식시간이나 미팅할 때도 운동을 한다.

은퇴후 대비해 ‘가족·친구·취미’ 공 들여야

열심히 일하는 것과 일중독은 다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로빈슨 교수가 일 중독자의 자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보다 더 우울하고 불안하며, 나중에 부모처럼 일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휴일도 없이 일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 일에 집중해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게 중요하다.

 핀란드 산업보건연구소 마리아나 비르타넨 박사팀에 따르면, 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40시간 이하 일하는 사람보다 단기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졌다. 장시간 근무가 심혈관질환뿐 아니라 두뇌기능도 망치는 것이다. 뇌도 피로가 쌓이면 알고 있는 정보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실수가 많아진다. 일중독을 피하려면 주말엔 반드시 휴식을 갖고 하루 중에도 쉬는 시간을 정해 놓는다.

 앞만 보고 달려온 많은 CEO는 은퇴를 맞고 공허해한다. 사회활동의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시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 대비가 필요하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고 취미생활도 갖는다. 인생에도 내리막을 걸을 때 기댈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이주연 기자

도움말 서울백병원 정신과 우종민 교수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조주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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