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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이상훈 대법관 가는 길 깨끗이 비켜선 동생 이광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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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상훈 대법관 후보, 이광범 수석부장(왼쪽부터)

스스로 법복을 벗기로 한 동생의 결단이 마지막 디딤돌이 된 걸까. 2011년 1월 이상훈(55) 법원행정처 차장-이광범(52)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 형제는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광범 수석부장이 사의를 밝힌 지 보름여 만에 이상훈 차장이 양승태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된 것이다.

 세 살 터울의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꼴의 삶을 살았다. ‘광주의 천재 형제’로 이름을 날린 두 사람은 모두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엘리트 법관의 길을 걸어왔다. 또 이용훈 대법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법원행정처의 요직을 맡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활달한 성격으로 격의 없이 두루 어울려 후배들의 신망을 받는 점까지 닮았다. 법조계에선 두 사람을 놓고 “형이 더 훌륭하다” “동생이 더 낫다”며 입씨름을 할 정도로 ‘난형난제(難兄難弟)’였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대법관이 될 것으로 봤다. 형이 없었다면 이 부장이 언젠가 대법관에 제청됐을 것이다. 동생이 형을 위해 길을 터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부장이 사의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형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장의 지인은 “이 부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사직을 고려했었다. 진보 성향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로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을 주도했던 자신이 형에게 부담이 되는 게 아닌지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이 차장이 대법관 후보로 복수 추천됐다가 결국 고배를 마셨다.

 형제를 모두 잘 아는 한 부장 판사는 “이 차장의 이념 성향은 오히려 ‘중도’에서 약간 오른쪽에 가깝다”며 “이 부장은 자신 때문에 형이 ‘진보성향’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고 부담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형이 걸어간 길을 동생이 그대로 밟아왔지만 이 대법원장에게 먼저 발탁된 것은 동생인 이 부장이었다. 그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을 지내며 ‘대법원장의 오른팔’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서울남부지법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무죄 선고 등 잇따라 불거진 ‘편향 판결’ 논란으로 형제의 길이 달라졌다.

 당시 서울고법 부장이었던 이 부장은 용산 농성자 사망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미공개 수사기록를 공개하도록 해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다음 달 정기 인사에서 그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맡던 행정법원 수석부장 자리를 맡게 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좌천성 인사’라는 얘기가 나왔다. 반면 이 차장은 인천지법원장에서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기용됐다. 이 대법원장이 혼란기를 무난하게 넘길 적임자로 그를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이 차장은 200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있을 때 이 대법원장이 제시한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형제는 의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 동반으로 술자리도 종종 갖는다고 한다. 28일 기자와 만난 이 부장은 형의 대법관 제청에 대해 “쑥스럽게 뭘 그런 걸…” 하며 말을 아꼈다. 그는 “한마디도 할 얘기가 없다”면서도 “좋은 일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구희령·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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