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우석 칼럼

고전문학사의 이단아, 천재시인 이언진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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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우석
문화평론가

고급문화에 관한 한 우리사회는 적막강산이다. 이렇다 할 논의나 생산적 논쟁이 드물다. 압도적인 대중문화·인터넷 등에 눌린 탓일까? 출판물의 경우 좋은 저작도 드물지만, 나온다 해도 살뜰한 관심이 덜하다. “뛰어난 아이디어는 난지도에 버려진다”는 말마저 나왔다. 그러나 우리문학사에 빅뉴스를 담은 국문학자 박희병(서울대 교수)의 『나는 골목길 부처다』(돌베개)에 대한 무관심만은 입술 깨물고 있기 힘들다.

 그건 조선조 천재시인에 대한 평전인데, 주인공이 이언진(1740~66)이란 인물이다. 전공자 사이에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미천한 역관(譯官) 출신인 탓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고전문학 사상 유례없는 괴물”이자 18세기 문제적 인간이 이언진이다. 2년 전 그의 시 170수를 담은 시집 『골목길 나의 집』, 해설서 『저항과 아만(我慢)』에 뒤이은 평전 출간은 괴물의 진면목을 확인할 호기다. 쉽게 말해 그의 등장은 우리문학사에 축복이다. 다소 밋밋했던 문학사, 지루한 주자학의 나라에 ‘급소’가 존재했음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우선 그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문학사에 아연 긴장감이 돈다. 이를테면 『홍길동전』의 허균이 제짝을 찾게 된다. 허균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100여 년 뒤의 이언진은 한 걸음 더 나간 아웃사이더이다. 당연히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松江) 정철과 다르며, 동시대인 연암(燕巖) 박지원과도 구분된다. 연암이 주자학의 틀을 넘지 않았던 중도파라면, 이언진은 극좌파다. 그래서 조선의 체 게바라다. 신분이 달랐던 연암에게 이언진이란 요즘 말로 ‘넘사벽(넘기 힘든 4차원 벽)’이었겠지만, 21세기에 그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즉 그는 18세기의 시인 김수영이다. “시는 시가 아니어도 좋다”고 선언했던 위대한 반시(反詩)주의자로 늠름하다. 그래서 조선조 ‘정신의 망명정부’라고 해야 옳다. 그런 이언진은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18세기 지성사에도 암시를 준다. 조선시대는 송시열 같은 외곬의 주자학자 외에 이언진 등 체제 밖 인물이 활동했던 것이다. 그의 시 몇 편을 읽어보자. 일단 짧은 게 특징인데, “시인으론 이태백과 같은 성/그림으론 왕유의 후신”(한시 원문은 생략)라고 말했다.

 자기 문장이 이태백·왕유 급이라는 선언인데, 이런 작품도 남겼다.“ 시는 투식(套式)을, 그림은 격식을 따라선 안 되니/…/앞 성인이 간 길을 가지 말아야/후대의 진정한 성인이 되리.” 조선조에 이런 목소리란 실로 전무후무했다. 당시 사람들을 옥죄어온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무게를 뒤엎는 담대함이다. 2세기 반을 건너뛰어 우리시대와 새롭게 만나는 이언진, 그의 등장이 실로 기쁘다. 놀라운 건 이언진의 천재성을 알아본 건 우리가 아니다. 그건 18세기 일본 땅이었다. 그 앞뒤 사정에 조선시대의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