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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는 ‘르 꼬르동블루’가 왜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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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사람들은 웰빙 먹을거리를 생각한다. 주류 중 와인이 주목받는 이유다. 남자는 하루 두세 잔(약 400mL), 여자는 하루 한두 잔(약 200mL) 정도 와인을 마시면 심장질환과 치매, 암을 예방하는 등 건강에 좋다는 의학보고서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기도 한다.

주류업계에선 2020년에는 국내 와인시장 규모가 1조5000억~2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때쯤이면 지금처럼 유명 와인 위주로 소비하는 과시형 소비보다는 가격 대비 맛과 품질을 중시하는 실속형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와인시장의 꾸준한 성장과 함께 서비스산업도 더 고급화할 것이다. 다른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고급 서비스산업은 이를 뒷받침하는 인재들이 충분히 육성돼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정책 과제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분야에서 줄어드는 일자리를 대신해 고용유발 효과가 큰 분야가 바로 식음료·서비스 업종이기 때문이다. 관련 산업을 잘만 키우면 실업률 해소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미취업자는 물론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쉽게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육기관 인증체계와 수강생에 대한 금전적 지원 시스템은 물론, 관련 자격증 제도를 정비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확실히 구분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사농공상’식 유교적 사고관이 대표적이다. 식음료와 서비스 관련 산업을 높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여전하다.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남성 취업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던 유통업체의 성장세가 한 예다.

 주요 취업포털에서 최근 조사한 결과 롯데와 신세계 같은 주요 유통기업들은 대졸 구직자가 가장 선호하는 직장 중 하나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르 꼬르동블루’나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같은 존경받는 유명 요리학교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학에는 호텔경영학과가 이 대학의 간판 학과로 꼽힌다. 졸업자들이 사회적·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 산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미국이나 유럽처럼 관련 교육훈련 분야가 보강돼야 하고 자격증 제도도 강화돼야 한다. 동시에 요식업 창업자 중 전문지식 보유자와 전문 서비스 능력 보유자를 우대하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전문가 교육과정 이수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현실도 문제다. 전문지식을 가졌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급여를 책정하는 관행 탓이다. 구태여 비싼 돈을 들여 학교를 다니거나 자격증을 딸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직이 잦아 직업의 안정성이 없는 것도 제대로 된 서비스산업을 키우기에는 불리한 여건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현장에 제대로 된 인재는 많지 않으니 소수의 쓸 만한 일꾼들의 급여만 과도하게 올라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관광경영학과·조리학과 등 관련 학과와 관련 기업들에 제대로 된 산학협동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학교에서는 이론을 가르치고 방학기간에 인턴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한 경험을 쌓는다면 학생과 기업 모두에 득이 될 것이다. 졸업 후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로 키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처럼 2~4년 동안 전공 공부를 하고도 학생 대부분이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또 세계적인 웰빙 문화에 부응해 슬로 푸드와 로컬 푸드가 결합된 지역특산 요리와 소스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제대로만 되면 와인과 서비스업이 제대로 발전해 관광 한국을 일구는 주요 인프라가 될 것이다. 10년 뒤 와인산업의 성장과 함께 발전한 관광한국의 모습만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