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 정치 바람 분다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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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기자] 부동산 정책에서 보기 드물게 정부가 허망하게 백기를 들었다. 리모델링 정책 말이다.

수직증축을 불허하겠다고 못 박으며 업계•주민들의 요구를 단칼에 잘라버리고는 채 한달 만에 ‘원점 재검토’라는 백기를 든 것이다.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데 대한 이렇다 할 이유도, 변명도 없었다. 그냥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리모델링 정책 표변을 보면서 내년 선거가 오버랩된다. 부동산 정책에 정치 바람이 부는 것일까. 정치 냄새를 떨칠 수 없다.

정부는 공들여 LH에 용역을 줘 수직증축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근 1년 가까운 산고 끝에 내놓은 게 ‘기존 방침 고수’였다. 그런데 그 이후 일이 묘하게 꼬였다.

청와대에서 나선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건축위원회)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리모델링 용역을 준 것이다.

바로 여기서 리모델링은 정치가 끼어들며 정치 문제가 된 것이다. 주무부서의 정책을 무시하고 따로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니. 그리고 이 용역에는 이미 결론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금까지 ‘업계 편’이니까. 업계의 요구•이해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번 사태 진행을 정치로 보는 것은 수십만명의 투표권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이 초미의 관심이 되는 지역은 분당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다. 리모델링 정책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이들의 민심이자 표심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국토부가 기존 방침을 고수하기로 결론 낼 때까지만 해도 정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후 예상보가 강한, 주민•업계의 파상공세가 벌어지면서 리모델링은 정책이 아닌 정치가 됐다.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리모델링은 좋은 정치재료가 된 것이다. 이미 야당에선 수직증축을 허용해야 한다는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부동산의 정치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때 뉴타운 이슈는 표심 블랙홀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집값이 표심을 흔들었다.

DTI 대출규제, 분양가 상한제 어떻게 될까

부동산 정책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올해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3월 끝나는 DTI 대출규제 완화다. 지난해 말을 지나면서 주택시장이 다소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어 논리적으로는 대출규제 완화를 끝낼 수 있다.

그러다 만약 대출규제 완화가 끝난 뒤 이게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면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보이고 있는 집값 회복세는 따지고 보면 추진력이 그리 세지 못하다. 회복세에는 얼마 남지 않은 대출규제 완화도 한몫 하고 있기도 하다.

산적한 미분양 등으로 대출규제 완화를 연장하더라도 집값이 급등하는 등 불안할 것으로 보는 전망은 많지 않다.

때문에 집값 급등의 우려가 크지 않다면 정부는 연장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을까 싶다. 이미 금리가 오르는 추세여서 정부로서도 “대출규제 완화를 연장해도 금리 인상이 대출 부담이 될 것”이라는 명분을 내놓을 수 있다.

또 하나 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이건 사실 표심보다는 업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사안이다. 정부도 이미 폐지 방침을 밝혔고 관련 법 개정안을 제출, 추진 중이다.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아직 폐지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에 막혀서다.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여당도 내심으론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을지 모른다.

표심은 상한제 유지 쪽으로 기울어 있으니. 주택 수요자 입장에선 상한제가 그나마 분양가 상승을 억제한다고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판을 칠 올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쉽게 폐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야당이 끝까지 반대하는데 여당에서도 반대급부를 뭔가를 주면서까지 폐지하려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집값 회복 분위기도 상한제 폐지 명분에 힘을 빼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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