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의 음울한 '피크닉'

중앙일보

입력

〈피크닉(PiCNiC)〉은 98년 서울국제독립영화제에서도 소개되었지만, 〈러브레터〉〈스왈로우테일〉등으로 수많은 한국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와이 슌지의 작품인 만큼 대다수의 일본영화 팬들에겐 익숙한 작품이다. 〈피크닉(PiCNiC)〉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96년 베를린 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되었고 베를린 신문독자 심사원상을 수상한 경력을 고려한다면 공식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한 노인이 황토빛 길 위에 늘어놓은 피빛 장미들을 검은 색 자동차가 밟으며 지나가는 첫 화면은 무언가 함축적 의문을 던지는 듯하며 장미의 색채에서 풍기는 선정적 느낌이 묘해 영화 전체에 강하면서도 음울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검은 색 차가 정신병원에 당도함으로써 〈피크닉(PiCNiC)〉의 작은 세계를 이루는 주 공간을 소개하는데, 음흉한 웃음을 띈 의료진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의 환자들은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살장을 연상시킨다.

철부지적 실수로 쌍둥이 동생의 목을 조른 코코, 성폭행을 가한 선생을 살해한 츠무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과거의 기억에 얽매인 사토루, 이 셋은 감옥같이 으시으시한 이 병원에서 친구가 된다. 병원 담 밖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담장 위의 탐험을 시작한 그들은 금지된 자유를 만끽하며 지구의 종말을 보기 위해 담장 위로의 소풍을 떠난다.

담벼락을 자른 카메라는 그들을 로 앵글(Low Angle)로 잡아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땅 위에서는 부자유스럽고 억압 속에 있는 그들이지만 좁디 좁은 위험천만인 담벼락 위는 오히려 그들이 자유로이 뛰어 놀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 된다. 새의 지저귐, 그들의 평온하면서도 미소 띈 얼굴, 그리고 그들 뒤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하늘과 녹색으로 흔들리는 나무들. 모든 것이 어우러져 조화롭게 하나가 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의 틀 밖에 있는 이 세 사람이야 말로 정상인보다 훨씬 자연 상태에 가까운 인간 본연의 모습임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조화로운 그들의 모습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균열을 보인다. 코코와 츠무지는 각각 인형과 권총이란 보물을 얻게 되고 둘 만의 특별한 유대가 생기면서 한 사람을 외톨이로 만드는데, 소외된 사토루는 뒤쳐지고 담장 위에서 떨어져 아름답고도 슬픈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한편 갑작스런 소나기 속에서 츠무지는 성스러운 고해성사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츠무지에게 끔찍스런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그를 짓눌러 왔던 과거를 내뱉게 하는 비는 그와 코코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까워지게 하는 촉매제며 죄를 씻어 내리는 성수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고해는 코코와 츠무지를 갈라 놓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고해를 한 츠무지를 뒤로 남긴 채, 평소 자신의 죽음이 곧 세상의 종말이라고 믿는 코코가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그것은 츠무지의 죄를 고해받고 그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죄과를 치르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성스러운 행위이며 그녀가 평소에 자신을 예수라고 주장하던 허튼 소리(?)를 연상시킨다.

피빛으로 물든 황혼의 바다에서 까마귀 깃털을 사방으로 날리는 코코의 몸을 끌어 안고 츠무지는 울부짖는다. 코코가 항상 입고 다니던 까마귀 깃털 망토는 '새'라는 이미지가 표현하는 비상과 자유를 상징화시켜 내면의 응축된 욕구와 바람을 표현한 것이며 더불어 검은 색이 뿜어내는 죽음의 향기는 그녀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를 짓기도 한다. 어쩌면 잘못과 실수로 뒤섞인 삶이 인간의 몫이자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거로 인해 심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무리를 격리시키고 정신병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우리 사회는 또 얼마나 온당한 것인가? 이와이 슌지는 이 세 사람의 〈피크닉(PiCNiC)〉을 통해 고정관념에 갇힌 우리의 사고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