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대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 만학도 4인4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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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야 젊어서 공부한 밑천으로 정년 까지만 버티면 노후가 어느 정도 보장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인생 이모작도 모자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젊지 않은 나이에 호서대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를 통해 인생 삼모작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글=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중년의 나이를 넘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만학도들. 뒤늦게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꿈을 이룬 사람도 있고, 석·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강단에 서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사람도 있다. 왼쪽부터 이미영, 김응경, 박두순, 김두웅씨. 조영회 기자

다시 도전하려 한다

천안시 흥타령 여성 축구단을 이끌고 있는 이미영(44)씨는 대전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석사과정에 입학 예정이다. 호서대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를 통해 사회복지학 학사과정을 이수한 이씨는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동양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회복지학 학사학위를 받고, 대학원 석사과정은 동양철학을 선택한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소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상담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인데 이제 와서 전공을 바꿔야 하는지를 물었다. 교수의 대답은 간단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해라”

 이씨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학사학위 도전 자체가 이씨에게는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평소 복지관에서 레크댄스나 우리 춤 체조 강사로 봉사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씨를 대학으로 인도했다. 과대표를 맡을 만큼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땄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동양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씨는 입학을 앞두고 동양철학 전공 교수로부터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이젠 노력만 남아있다. 이씨는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헌신적이 뒷바라지가 있어 이미 많은 목표를 이뤘다. 새로운 도전 역시 성공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

천안YWCA에서 일하고 있는 김응경(46·여)씨. 그는 올 3월 백석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했고, 이후 아이 돌보고 사회생활 하다 보니 어느새 40줄을 훌쩍 넘어섰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겠거니 했지만 넘치는 지적 호기심(?)과 공부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서대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점은행제를 알게 됐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하고 학점을 이수하면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으니 ‘딱 이다’ 싶었다.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4년 만에 학사학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제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 석사를 따면 박사에 도전할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무슨 꿈같은 것이 있어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젊어졌다. 꿈이 생겼다. 박사학위를 받으면 대학 강단에 서보고 싶다. 물론 그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엄마의 성적표를 본 아이들이 자극을 받았나 보다. 엄마도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는지 성적 장학금을 받아 오더라. 엄마에 대한 존경심도 생긴 것 같아 뿌듯하고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며 밝게 웃었다.

제대로 봉사하고 싶다

박두순(55·여)씨는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이다. 2006년 상담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그는 2007년 호서대 학점은행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4년 만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호서대 대학원 상담심리학 석사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다.

 2003년부터 복지시설 자원봉사 일을 하면서 스스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대로 봉사하려면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작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자신의 가족이었다.

 이전에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기중심적이었다. 서로 얼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박씨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박씨는 “학점은행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가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가 절실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나 교수 역시 배움에 열정이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는데 아낌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이 들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배움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 나이는 숫자일 뿐

김두웅(60)씨는 현재 호서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 논문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호서대 법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이기도 한 그는 2003년 호서대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 체육학과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만학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젊은 시절 태권도를 했다. 운동을 하다 보니 공부는 등한시 했다. 나이가 들고 나니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쉰을 넘기고서야 학점은행제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민했다. 술도 많이 먹었다. "이 나이에 공부를 해서 무엇 하나.” 그래도 공부가 하고 싶었다. 50을 넘긴 나이에 대학에 가겠다고 했더니 제일 놀란 것은 아버지였다. “학비 대준다고 해도 제 싫어 안간 대학을 다 늙어서 가려 하느냐”며 핀잔을 했다. 하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김씨가 없는 곳에서 며느리(김씨의 부인)에게 “아들이 기특하다”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학점은행제 과정을 듣는 후배들을 교육하고 있지만 더 배우고 자격을 갖춰 교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키우고 있다. 그는 “신체 나이는 몰라도 공부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배움의 기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학점은행제를 통해 인생 삼모작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 공부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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