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스스로를 낮춘 박완서 … 장례식도 문인장에서 가족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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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 박완서씨. 마지막 가는 길까지 스스로를 낮췄던 그의 삶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당초 문학인장으로 하려던 장례식이 조촐한 가족장으로 변경된 게 대표적이다. 유족들이 고인의 신앙생활을 고려해 “교적(敎籍)이 있는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일반 천주교인과 같이 소박한 장례미사로 치르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賻儀)를 받지 말라던 고인의 유지와 상통하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박씨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삼성서울병원 빈소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보내 영전에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애도 메시지에서 “박 선생께서는 전쟁과 분단, 가난과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삶의 조건을 따뜻하게 보듬어 우리 문학사에 독보적 경지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의 많은 작품은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안겨줬고 문학적 치유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고인의 발인은 25일 오전 8시 40분 진행된다. 오전 10시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른 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조용한 신앙생활=고인은 1982년 가톨릭에 입문했다. 지난해 4월 서울 대치2동 성당 부활절 특강에서 “1남4녀 중 3명이 서울대, 두 아이가 연세대·이화여대를 나오고 모두 건강한데다 남편과 금슬도 좋았던 나의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신앙을 가졌다”며 “성당은 유명인이라고 아는 척을 하지도,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이던 외아들을 과로사로 잇따라 잃으면서다. 박씨는 “부산의 분도수녀원에 칩거하면서 십자가를 던지는 등 하느님과 극심하게 싸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천주교 관계자들은 “장례미사에는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 나자로 마을을 이끌던 김화태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인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주로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따르는 후배 많아=고인은 문단 행사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학연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따르는 후배 문인이 많았다. 후배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경자·임철우·김영현·방현석씨, 시인 민병일씨 등이 고인의 구리시 자택을 자주 찾았다. 전남 보길도까지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다.

 임철우씨는 “말씀이 별로 없으셨지만 굉장히 편안한 분이셨다. 권위적이거나 까다롭지 않았다. 어머니나 큰이모, 누님 같았다”고 말했다. 또 “개성 근처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로 북적대는 유년을 보낸 때문인지 여러 사람을 집으로 불러 왁자지껄하게 지내길 좋아하셨다 “고 했다.

 고인은 젊은 작가들도 열심히 챙겼다. 그가 마지막으로 심사에 참여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은 올해 6명을 뽑을 예정이었다. 함께 심사한 평론가 김화영씨는 “하지만 고인이 7명을 추천했고 결국 7명을 뽑았다”고 했다. 싹수 있는 후배는 어떻게든 챙기려 했다는 것이다. 소설가 방현석씨는 “선생님은 사실 작품 보는 눈이 깐깐하셨다. 아무리 친한 후배라도 작품이 시원찮으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후배도 곁에 두고 따뜻하게 대했다”고 했다.

 ◆서점가 ‘박완서 특수’=고인의 소설·에세이 판매량이 평소보다 3배에서 20배까지 늘었다. 서점들은 특별코너나 회고전을 마련하고 있다. 온라인서점 예스24는 “하루 평균 20권 정도 팔리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지난 주말 하루 평균 130권이 팔렸다”고 밝혔다. 『나목』『친절한 복희씨』『엄마의 말뚝』 등도 판매량이 10∼20배 늘었다. 교보문고는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인의 특별코너를 만들었다. 예스24는 고인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회고전을 연다. 인터넷서점 알라딘도 특별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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