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드림호 학습효과 … 정부 “더 이상 해적의 봉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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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217일 만에 풀려난 삼호드림호(뒤쪽)를 청해부대 왕건함이 공해상에서 호송해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모습. 삼호해운은 두 달 만에 1만2000t급 화학물질 운반선인 삼호주얼리호가 해적들에게 억류되는 상황을 맞았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정부는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삼호주얼리호 납치 사건 닷새째인 19일도 “협상 불가, 석방금 지급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서 활동 중이던 해군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 최영함(4500t급)을 2000㎞ 떨어진 피랍 현장으로 급파한 것은 지난해 4월 발생해 217일 만에 종료된 삼호드림호 사건의 악몽과 맞물려 있다.

 삼호드림호 선사(船社)인 삼호해운은 해적들에게 몸값 950만 달러(약 105억원)라는 사상 최고액을 지불했다. 해적들이 같은 회사의 삼호주얼리호를 노린 것은 삼호드림호 학습 효과 때문이고, 정부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하는 것은 삼호드림호 교훈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삼호드림호 사건 당시 대한민국이 해적들의 협박에 끌려다닌 인상을 주면서 국격이 훼손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는 이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 한국인은 해적이나 테러단체의 ‘봉’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

 2006년 동원수산 소속의 참치 원양어선 동원호가 피랍된 이후 한국 상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사례는 8건. 그 가운데 삼호드림호 사건은 최악이었다. 지난해 4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미국 루이지애나로 향하던 삼호드림호는 인도양에서 납치됐다. 당시 아덴만에 파견돼 있던 청해부대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함이 피랍 현장으로 급파됐다. 충무공이순신함은 오만의 살라라 항에서 출발해 하루 만에 삼호드림호에 근접 추격하는 데 성공했지만 상황은 군사작전을 통해 선원을 구출하려는 군의 의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 언론이 충무공이순신함의 작전을 시간대별로 보도하자 해적들은 7일 삼호드림호 선원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해적들은 유유히 삼호드림호를 몰고 소말리아 중북부 항구도시 호비요 연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충무공이순신함은 먼 발치에서 이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소말리아 영해에서의 군사 공격은 국제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충무공이순신함이 철수하고 군사작전이 배제된 채 시작된 삼호해운 측과 해적들의 협상은 해적 주도로 될 수밖에 없었다. 삼호드림호에는 당시 1억7000만 달러(약 1880억원) 상당의 원유가 실려 있었고, 인질이 된 선원 24명이 있었다. 협상 과정에서 정부는 뒤로 빠졌지만 국내에선 ‘정부가 조속히 해결하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해적들은 선원들을 가족과 통화하게 하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주선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폈고 결국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해적과의 협상은 국제사회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해적이나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초동 단계에서 해적을 제압하는 게 최선의 방책임을 일러준다. 청해부대의 아덴만 파견은 해상 교통로(Sea lane)의 안전 확보와도 맞물려 있다. 우리 상선의 피랍지점들은 무역입국인 한국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중동산 석유의 상당 부분이 이 루트를 통해 이뤄진다. 이 수송로가 막히면 국가이익은 큰 침해를 받는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국익 수호는 물론 중견국가에 걸맞은 역할을 위해서도 청해부대가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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