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보호자는 병원의 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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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경제 선임기자

“집 있는 분을 보호자로 데려오세요. 보증인으로 세우든지. 이대로는 입원수속 안 됩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입원수속을 하던 한 환자 보호자가 창구직원에게 들은 말이다. 곧 쓰러지기라도 할 듯한 환자가 있는데도 다른 보호자를 요구한 것이다. 환자와 그 보호자 모두 무주택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집 있고 소득 웬만한 다른 가족을 보호자로 세워 입원수속을 마쳤다.

 병원 원무과장의 설명은 이렇다. 진료만 받고 야반도주하는 사람이 많아 그런 기준을 뒀는데, 그날따라 직원이 까다롭게 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병원의 미션이 뭔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다. 그럼 인류 앞에 ‘돈 있는’이라는 수식어라도 감춰져 있다는 말인가.

 보호자에 대한 병원의 시각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의사가 환자를 공공성에 기초해 대한다면 병원은 보호자를 영리 차원에서 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호자란 진료비를 낼 채무자쯤으로 비춰지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신촌 세브란스만의 얘기가 아니다. 다른 입원 접수창구에 가 보자. 원무과 직원은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 접속해 환자·보호자·보증인의 등기부를 확인한다. 자기 집인지 보는 거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 전산망으로 건보료 납부내역을 알아본다. 직장도 따진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지 여부가 포인트다. 원무과 직원은 그런 식으로 환자나 보호자의 간을 본다. 물론 불법은 아니다.

 이때 걸리는 사람도 있다. 원무과 직원의 눈에 진료비를 낼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이 경우 소득수준이 괜찮은 사람을 보증인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수속이 지체되는 새 환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병원 책임이 아니다. 아직 그 병원의 입원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급한 마음으로 병원 측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에겐 늘 ‘을’이다.

 병원들은 미수금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선 야박한 대부업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돈독 오른 병원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수가가 낮기 때문에 진료비 이외의 수입을 올려야 하는 게 병원의 현실이다. 하루에 수십만원 하는 1~2인실에서 며칠 매상을 올려줘야 다인(多人)실로 옮길 수 있고, 도심지 최고 수준의 주차료를 물고, 어쩔 수 없이 비싼 밥을 사먹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돈 없으면 응급실에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미국에 비해선 우리가 훨씬 낫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두면 의료의 공공성은 점차 훼손될 수밖에 없다.

 보호자의 부담은 금전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의료현장에서 보호자는 실질적인 간호 보조인력이다. 입원실에 가 보라. 병상마다 간이침대가 바닥에 놓여 있다. 겨우 몸을 누일 널빤지에 불과하다. 보호자는 여기에서 24시간 환자를 ‘셀프 간병’한다. 약 먹는 시간에 물 떠주고, 뭐 먹었는지 체크하고, 열 나면 간호사 부르고, 움직이면 부축해주고, 때 되면 용변 받아내고…. 병원이 할 일을 대신한다.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또한 건보 재정 여건 탓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보호자는 환자 다음으로 힘이 든다. 간병하다 병을 얻기도 한다. 병원이 다 알아서 하는 ‘보호자 없는 병원’이 시범운영된 적은 있다. 하지만 이게 뿌리 내리기엔 아직 여건이 따라주질 않는다.

 그럼 병원은 보호자들에게 뭘 해주고 있나. 별로 없다. 종합병원은 대개 보호자용 침구를 제공하지 않는다. 보호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호자도 언젠가 환자가 된다. 병원의 잠재고객이다. 기업이라면 이들에게 열심히 마케팅을 할 텐데 병원은 신경을 안 쓴다. 아프면 제 발로 찾아오겠지 하는 태도다.

 병원엔 환자의 권리를 정한 환자권리장전이란 게 있다. 이젠 이것만으론 모자란다. 보호자권리장전을 따로 둘 필요가 있다. 환자 보살피랴, 용태에 가슴 졸이랴, 의사 눈치 보랴, 돈 내랴, 보호자들은 허리가 휜다. 이런 보호자들, 존중받는 ‘갑’의 자격 충분하다.

남윤호 경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