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개나리’ 소리 듣던 일제 경찰…본토 시험 떨어진 ‘자격미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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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제의 한국 강점 직후 동대문경찰분서의 경찰들. 일제는 3·1운동 이후 헌병경찰제를 폐지하는 대신 경찰 인력을 대폭 늘렸다. 이때 본토의 경찰 시험에 여러 차례 낙방한 일본인들이 대거 식민지 경찰에 합류했는데, 총독부 관리들조차 이들의 ‘질’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질 떨어지는 경찰은 총독 정치의 야만성을 표상했다. [사진 출처=『한일병합사』]

1970년대까지 오래된 극장 뒤편 구석에는 칸막이로 둘러싸인 특별한 좌석 하나가 남아 있었다. 좌석번호가 없는 자리라 보통은 비어 있었지만 때로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자가 홀로 앉아 있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50년대 초까지 다중(多衆)이 모이는 장소엔 반드시 설치됐던 ‘임석경관석’이라는 자리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소매치기·성희롱·폭행 등의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임석경관은 그런 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할 책임도 졌지만 더 중요한 임무는 무대나 연단에서 돌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 ‘불온 발언’을 막는 것이었다.

 20년대 대중 강연을 잘하기로 유명했던 월남 이상재는 YMCA 등에서 강연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강당 뒤편의 임석경관석을 가리키면서 “저기 개나리꽃이 피었네”로 시작했다. 사람들이 경찰을 대할 때 앞에서는 ‘나리’라고 높여 부르고 뒤에서는 ‘개자식’이라고 욕하는 세태를 빗댄 유머였다. 그럴 때면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으나 일본인 경관은 그저 어리둥절해 좌우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극장이나 강당뿐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 경찰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신경과민’이 돼 있던 3·1운동 직후 시골 어느 보통학교의 학예회 때 일이다. 어린 학생들이 식순에 따라 공연하던 중 일본인 임석경관이 갑자기 호루라기를 불고 “중지”를 외치며 무대 앞으로 달려 나와 행사를 중단시켰다. 교사들이 이유를 묻자 경관은 눈을 부라리며 이번 순서가 ‘독창(獨唱)’인데 이게 ‘독립 창가’를 줄인 말이 아니냐고 닦달했다. 무식한 경찰의 황당한 행패 탓에 모처럼의 동네잔치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조선 경찰 중 60% 이상이 일본인이었는데, 이들은 대개 일본 본토의 경찰 시험에서 여러 번 떨어진 뒤 마지못해 식민지에 자원한 사람이었다. 일본 경찰로는 ‘자격 미달’인 사람들이 식민지에서는 최일선의 행정을 담당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이 수없이 일어났다.

 경찰은 근대국가의 국민이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국가 기구다. 다른 나라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외교관이나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지만 자국민에 대해서는 경찰이 대표한다. 경찰이 부패하면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경찰이 강압적이면 국민이 국가를 원망하게 된다. 아직도 경찰을 둘러싼 이런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