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 ④ 중·일은 뛰는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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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역사교육 전쟁, 한국만 무장해제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역사 교육은 미래로 나아가는 젊은 세대의 디딤돌이다. 교실 밖으로 내몰린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되돌리자. 역사 교육 앞에 쳐진 거미줄을 이젠 걷어낼 때다. 이를 이미지화했다. [조문규 기자]

중국과 일본은 뛰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타도했던 전통과 역사를 되살려낸다. ‘공자 부활’ 현상도 이와 연관된다. ‘고구려=중국사’라고 강변하며 없던 역사도 만들어 냈다. 일본에선 규모가 큰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일본사 필수’를 외치고 나왔다. 내년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우리는 손 놓고 있다.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 시리즈에서 짚었듯, 학교 교육은 형식과 내용 모두 부실하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독도 도발이 일어날 때면 “국사 강화”를 외칠 뿐이다. 학교 교육만 그런 게 아니다. 1997년 사법시험에서 국사과목이 제외된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엔 각종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국사가 빠졌다. 그나마 이런 공백을 메우는 장치가 2006년 말부터 시행된 ‘역시(歷試·한국사능력검정시험)’다. “한국사는 ‘역시’로 버티는 상황”이란 말까지 나온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은 “‘역시’는 국사가 심하게 홀대받는 상황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역시’가 공교육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역사 공정’=“초등학생부터 중학생, 대학생까지 얕은 곳에서부터 깊은 곳까지 쉬지 않고 중국 근현대사를 교육해야 한다.”

 1991년 8월 장쩌민(江澤民·강택민) 당시 국가주석이 한 지시였다. 같은 달 중국 국가교육위는 ‘초·중·고 역사과목 사상정치교육 개요’를 내놓았다.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중국 고대문화사와 근대사, 현대사 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8년 뒤 장 주석은 인민교육출판사가 발간한 역사·지리 교과서를 직접 열람했다. 그러곤 “청소년들이 역사 공부를 통해 중화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알고 애국주의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간부들도 역사와 지리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중국 교육의 중심에 역사가 다시 돌아온 건 89년 이후다. 그해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있었고 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역사교육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다.

 96년엔 국가교육위가 ‘전일제(全日制) 보통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요’를 공표했다. 교육부는 꾸준히 역사교과서를 개정해 오고 있다. 최근엔 ‘중·고등학교 역사과목표준’을 공표했다. 그 목적은 학생들이 주동적으로 역사교육에 참여하며 창의력을 키우게 하는 데 있다. 2~3개월마다 학생 양성 계획과 역사 과목 연구 등 내용이 담긴 ‘역사 브리핑’을 배포한다.

 역사 교육은 주로 중·고 과정에서 이뤄진다. 고1까진 필수과목이다. ▶정치 문명 과정 ▶경제 성장 과정 ▶문화 발전 과정을 배운다. 문과생이 보는 대학입시 ‘문과종합’에도 역사가 포함된다.

 ◆일본은 도쿄 등 덩치 큰 지자체가 나서=도쿄(東京)와 가나가와(神奈川)현 등 수도권의 지자체들이 내년부터 공립 고등학교에서 일본사를 필수과목으로 한다. 일본과 지역사회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화하는 움직임이다.

 일본에서도 고교에서 일본사를 기피하는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됐다. 도쿄의 경우 지난해 도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4명 중 1명이 고교 3년간 일본사 수업을 한 시간도 받지 않았다. 175개 도립 고교 가운데 8개 학교의 교과과정이 일본사 과목조차 없다. 대학생들이 상식에 가까운 역사적 사실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자 지자체가 들고 일어났다. 도쿄도와 가나가와현, 사이타마(埼玉)현, 지바(千葉)현은 2006년 9월 연명으로 문부과학성에 2013년도 개정되는 신학습 지도요령의 필수과목에 일본사를 포함시킬 것을 건의했다. 도쿄도는 같은 해 10월 일본사를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는 역사·전통교육을 강조했던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정책과도 맥을 같이한다. 현재 수도권 지자체 외에도 이시카와(石川)현·이바라키(茨城)현·도야마(富山)현 의회도 일본사 필수과목 채택에 적극적이다.

 도쿄도는 자체 제작한 일본사 교재를 4월 중 일선 학교에 배포할 예정이기도 하다. ‘에도에서 도쿄로’라는 제목의 208쪽짜리 일본사 교과서는 도쿠가와(徳川) 막부가 시작된 에도시대부터 지금의 도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34개 항목에 담았다. 일각에선 이런 움직임이 애국교육을 강화, 우경화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도쿄도 교육청 고등학교교육지도과의 센다 나오토(仙田直人)는 “일선 교사와 역사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든 교재는 객관적인 사실로만 채웠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 만들어진 도립 고등학교 일본사 교재를 보면 종종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영토·역사 문제보다는 도쿄의 변천 등 향토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95년 이후 일본은 세계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일본사는 선택과목이다. 초·중학교의 역사 교육이 일본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고교 과정에서는 세계사를 보완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도 대입에서 일본사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대입에서 일본사를 선택한 수험생이 전체의 40%로 지리(32%)·세계사(26%)를 택한 학생보다 많았다. 대학 진학률이 높은 인문계 고교에서 일본사를 사실상 필수과목처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립 명문인 히비야고의 경우 3년간 385시간의 일본사 수업을 하고 있다.

정치권도 나섰다

정치권도 한국사 교육 강화에 나선다.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란 중앙일보 어젠다에 대한 호응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건 소신”이라며 “어떤 대책이 가능한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나경원 최고위원도 “우리 문화콘텐트에 혼이 부족해 보이는 건 역사교육이 제대로 안 돼서다”며 “한국사 과목을 당연히 필수로 하고 그 이상 필요한 게 뭔지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철 정책위의장도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화를 포함, 어떤 강화방안이 가능한지 당 차원에서 토론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도 “역사는 그 나라의 기개와 가치를 정립하는 핵심 요소”라며 “국가를 유지하고 그 중심에 국민 정신을 두게 한다는 의미에서 역사교육은 반드시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또 과거를 보면서 현재를 보기 위해서도 역사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정치권에선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화도 검토 중이다.

 현재 국회엔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대학이 입시전형 자료로 수능 한국사를 보도록 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등이 지난해 3월에,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 등이 7월 발의했다. 이성헌 의원은 “지역구(서울 서대문갑)의 연세대·이화여대 학생을 만나 보면 가치관이 우리와는 다르더라.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그중 하나가 역사 인식이 너무나 달라서였다”며 “상임위에서만 적극적으로 논의되면 법안의 본회의 통과는 자신한다”고 말했다. 김을동 의원도 “법안이 빨리 통과돼 역사교육이 필수화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며 “2월 임시국회 중 관련 법안이 상정, 처리될 수 있도록 의원들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각계에서도 호응

한국사 교육을 염려하는 각계 전문가 목소리를 4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올해부터 한국사가 고교 교육현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많은 분들이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의견을 전해 왔다. 교과서 내용과 수업 방식의 변화도 촉구했다.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교육을 하자” “다문화 시대에 맞는 ‘열린 역사’를 가르치자”는 의견이 이어졌다.

◆역시(歷試)=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별칭.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한국사 대중화 프로그램이다. 각종 국가고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에서 홀대받아 온 한국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2006년 11월 도입됐다. 2007년에는 카자흐스탄 역시를 시작으로 미국·일본 등 해외에서도 재외동포와 외국인을 대상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2012년부터는 역시가 한 차례 늘어나 연 4회 실시된다.

◆특별취재팀=배영대·고정애·천인성·박수련·심서현 기자, 뉴욕·베이징·도쿄 정경민·장세정·박소영 특파원,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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