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축산연구소 구제역 대처가 이 모양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우량 한우와 돼지 품종을 개발하고 가축 인공 수정용 정액을 생산하는 경북 축산기술연구소마저 구제역(口蹄疫)에 뚫렸다. 씨소와 종돈까지 대부분 살(殺)처분되는 바람에 가축 우량 품종 개발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연구소가 구제역 발생 사실을 정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6일 동안이나 숨겼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매몰 처분이 늦어져 방역에 큰 허점을 드러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정부의 초동 방역 실패로 전국이 사상 최악의 구제역 광풍(狂風)에 휩쓸리고 있는 비상 상황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연구소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처를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축산기술의 메카’로 불리는 연구소의 전 직원이 안동 구제역 발생 초기부터 연구소 내에서 숙식하다시피 하며 방역에 매달린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구제역 의심 증세가 나타난 이후 보인 행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연구소 측은 지난 2일 구제역 의심 증세를 보인 칡소 한 마리의 검사를 의뢰하면서 연구소 명칭을 명시하지 않고 소장의 이름과 주소만 기입해 개인 농가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런 탓에 5일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구제역 검사를 해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나 농림식품부는 연구소의 구제역 발병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대로 된 신고나 보고가 없는데 후속 조치가 제대로 될 리 있겠는가.

 연구소는 자체 인력과 장비로 관리 중인 가축 1100여 마리의 살처분에 나서 일주일이 지난 어제 매몰 작업을 마무리했다. 전파력이 강한 구제역 방역의 원칙은 발생 농장과 반경 500m 내 농장 가축의 즉각적인 살처분이다. 그런데 살처분에 일주일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규정과 원칙을 지키도록 지도해야 할 방역당국과 산하 공공기관이 오히려 이를 무시하고 구제역을 확산시킨 꼴이다. 이런 안이한 대처가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면 구제역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연구소 사태의 전말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