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되치기 당한 북한 구애 계속? 위협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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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시작된 북한의 대화 공세에 정부가 북핵과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먼저 다루자고 역공을 취함으로써 향후 남북 관계의 향배가 주목받고 있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남북 관계가 대화 쪽으로 선회할지 아니면 더 꽁꽁 얼어붙게 될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의 올해 기상도가 그려지는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인 셈이다.

 북한의 대화 공세는 파상적이다. 북한은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북남 대결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5일)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8일)를 잇따라 내놓았다. 10일엔 통지문을 통해 날짜까지 넣은 대화 일정을 제시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북한의 대화 제의나 남북 관계 재가동 움직임에 진정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1일 ‘남북 공동체 기반조성사업’ 착수보고회에서 “북한이 막대한 우리 국민의 희생을 초래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도발 후 평화공세 그리고 평화공세 후 도발이란 북한의 반복적 패턴을 직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부는 인도적 차원의 적십자 채널 가동은 용인하되 경협사무소의 경우 북측 인원이 복귀한다고 해도 북측이 추방했던 남측 인원은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천안함 도발에 대한 지난해 5·24 대북 교류·경협 제한조치를 지속한다는 취지에서다. 북한은 10일 통지문에서 이 두 가지의 유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남북이 고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우리 정부의 수정 제의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대화 공세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남북 대화 제안이 대남 접근 자체의 필요성보다는 국제정세를 반영한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다. 미국과 중국은 온도 차는 있지만 북핵 문제를 다룰 6자회담에 앞서 남북 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대화 공세를 통해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회담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백화점식 대남 유화카드를 선보이며 선전전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한은 모두 19일 워싱턴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국면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한국 정부의 수정 제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평화공세를 접고 다시 대남 위협과 도발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3월 개성공단 을 비롯한 일련의 대화 제의를 내놓다가 통일부가 같은 달 15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진상 규명 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대북 통지문을 보내자 11일 뒤 천안함 도발 사태를 일으켰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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