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해방구 '로큰랩'

중앙일보

입력

3인조 힙포켓은 록에 랩을 결합한 신종 장르 '로큰랩' 밴드다. 얼마전 서울 대학로의 한 라이브 클럽. 힙포켓 멤버인 기타 노병기, 베이스 백중현, 드럼 김상윤 셋 전원이 노래와 랩을 교대로 구사하며 풍성한 사운드를 터뜨렸다.

그 옆에서 객원DJ 렉스가 턴테이블 두대를 이용해 날카로운 스크래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콩가. 팀발 등 라틴 타악기를 두들겨대는 퍼커션 주자의 존재도 여느 록밴드와는 달랐다.

메탈과 랩이 융합된 음악이 흘러나오자 힙합바지를 입은 10, 20대 청중들은 일제히 몸을 흔들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찔러댔다.

"TV를 켠다 / 너도 나도 죽어간다 / (중략)눈감을 것 없잖아 / 어차피 똑같은 세상 얘기할 것 없잖아 / 니가 판 무덤이야!"

TV와 PC게임에 중독돼 무뇌아(無腦兒)가 돼가는 현대인들을 풍자한 노래 '에브리바디 투 다이' 였다.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공연장 분위기 때문에 그 풍자가 청중에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신종 '로큰랩'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표주자는 힙포켓말고도 이달초 데뷔음반을 낼 정키가 있다. 시나위. 윤도현밴드 등 전통적 메탈밴드들이 올한해 휴식에 빠져있는 동안 록 팬들은 한창 유행중인 힙합에 빠져들게 됐다.

이들에게 록의 선율에 힙합 리듬을 혼합한 '로큰랩'은 멋진 대안이 됐다. 로큰랩은 속도감있고 꽉찬 사운드를 선호하는 요즘 취향에 잘 들어맞는다. 해외에선 림프 비즈키트 같은 로큰랩 밴드들이 차트상위를 점령한지 오래다. 국내 로큰랩 밴드중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힙포켓은 중상층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대학에 가지않은 젊은이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편모 가정에서 어렵게 살며 학교에서는 구타당하고 술, 담배, 약물로 고통을 잊는 왕따 아이들'을 직설적인 랩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을 재치넘치는 기계음 샘플링과 리드미컬한 기타주법으로 둘둘말아 청중 가슴에 들이댄다.

리더 노병기는 고교졸업후 프로야구단(청보 핀토스)투수로 들어갔다가 어깨부상으로 꿈을 접은 뒤 폭주족 생활을 거쳐 록밴드 기타주자가 된 이색적 경험의 보유자.

그는 "운동하던 시절 선배에게 맞고 후배들에게 그 분풀이를 하곤했다. 맞은만큼 돌려주는 악순환이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이런 구조는 어디나 똑같았다. 음악을 하면서 비로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자연 학원폭력을 비판하는 노래를 많이 부른다." 고 말한다.

비애와 블랙 코미디가 담긴 힙포켓의 폭력적인 랩에는 신세대의 분노가 표출돼있다. 타이틀곡 '머리독'은 학교에서 두들겨맞고 집에 와서 방문을 쾅 닫고 우는 소년 이야기.

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내용의 '펌프 잇 업', 종말론적 냄새가 물씬한 'D-데이', 공포영화 주제가로 쓰일법한 '악마의 인형' 등 대부분 노래들이 염세적이고 자학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음반에 실린 12곡중 절반이 방송금지를 당했다.

그러나 힙포켓의 한 젊은 팬(17)은 바로 이 점이 밴드와 팬들을 이어주는 끈이라고 말했다. "멤버들은 어떤 의미에서건 사회와 불화한 사람들이고 우리중 상당수는 학교에서 몰매를 맞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 좋다."

힙포켓은 14일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라이브 왕자' 이승환의 호화판 무대(080 - 337 - 5337)에 고정 오프닝 밴드로 초청됨으로써 실력을 공인받았다.

이승환은 "탄탄한 연주, 안정된 랩, 세련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실력파 밴드다. 우연히 음반을 들었는데 언더 가수 작품중 가장 힘차고 신났다. 즉석에서 내 무대에 초청키로 결정했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편 정키는 아직 10대 내음이 가시지않은 20대초반 남성 4인조. 힙포켓에 비해 좀더 가볍고 경쾌하며 록과 힙합의 결합은 물론 펑키. 레게.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시켜 크로스오버 음악을 추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