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저 갤러리 함성” 청각장애 골퍼 이승만 새 세상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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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인공와우 이식 수술로 청각을 찾은 이승만이 헤드셋을 끼고 밝게 포즈를 취했다. 그는 “경쾌한 임팩트 파열음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샷의 거리감이 좋아졌다”며 활짝 웃었다. [김상선 기자]

바람 소리가 들린다. 갤러리의 함성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반가운 건 임팩트 때 경쾌한 파열음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안 투어와 국내 투어를 오가며 활약 중인 프로골퍼 이승만(31) 이야기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청각장애 골퍼’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청각장애’ 골퍼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의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인공와우(人工蝸牛·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은 덕분이다. 선천성 청각장애인이었던 그는 이제 새로 태어났다.

“봅슬레이 국가대표 김동현 선수가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귀가 번쩍 뜨였지요. 당장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이승만의 아버지 이강근(63)씨의 얘기다.

3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친 뒤 이승만은 필드로 돌아왔다. 오른쪽 귀에 작은 인공와우를 장착하고서다. 처음엔 ‘삑삑’ 하는 소리만 들리더니 수술 사흘 만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듣게 됐다. 이전에는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만으로 대충 뜻을 파악해야 했는데 이제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귀가 안 들릴 때는 사방이 조용해 어항 속의 금붕어나 다름없었다.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절대 고요. 다른 사람이 입만 벙긋벙긋하는 모습만 말없이 지켜봐야 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깐 그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곤 했다.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서 혼자 화를 삭여야 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귀가 들리면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됐다. 무엇보다도 성격이 밝아졌다.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도 무표정하게 침묵을 지키던 일은 이제 옛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은 어눌하지만 아버지 이강근씨에게 수화 대신말로 먼저 속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승만은 수술 직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투어 블랙 마운틴 마스터스에 참가해 당당히 3위에 올랐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이승만을 만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분이 어떤지 물어봤다.

“무엇보다도 임팩트 소리가 들리니까 거리감이 좋아졌다. 귀가 들리지 않았던 과거엔 감각만으로 공을 때렸는데 이제 임팩트 소리만으로 공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날아갈지 감이 온다.”

이승만은 올해 말께 왼쪽 귀에도 인공와우를 이식할 계획이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행복한 고민도 생겼다. 플레이 도중 갤러리의 함성 소리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1번 홀에서 티샷할 때는 아예 인공와우의 스위치를 꺼놓는다. 경기 도중 집중력이 필요할 때도 그는 스위치를 끈다. 그랬다가 아이언 샷을 하거나 퍼팅을 할 때는 다시 스위치를 켠다.

“귀가 들리니깐 참 행복해요. 기자님 목소리가 중저음인 줄은 처음 알았네요. 올해 말께엔 저랑 함께 노래방이라도 가시죠.”

이승만은 지난해 12월 30일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러면서 올해 초 열리는 아시안 투어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졌는데 이승만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에게 새 삶을 주신 신촌세브란스병원 최재영 교수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주세요.”

기자는 이승만의 목소리가 그렇게 멋진 줄은 처음 알았다. 

글=정제원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인공 와우(人工 蝸牛)=청각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손상되거나 상실된 유모 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는 전기적 장치. 난청이거나 전혀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청각을 제공하는 인공 전자장치다. 보청기나 촉각기 등 청각 보조 도구를 착용하고도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시술 대상이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전기적 자극으로 변환해 청각신경을 자극하는 전극을 달팽이관에 이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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