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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10년 구조조정 한계 … 가공식품 개발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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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출하철을 맞아 제주시 근교의 한 농가에서 시장에 내놓을 감귤을 선별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영하]

제주도는 감귤 수확철을 맞아 최근 보도자료를 냈다. 10㎏ 기준 1만4000원. 12월 기준 경락가로는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값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1만7000여㎡의 과수원을 빌려 감귤 농사를 짓는 민모(55·제주시 한림읍 상명리)씨는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는 “풍작일 땐 가격이 폭락해 재미를 못 보고 흉작일 때야 제값이 나오니 수입은 늘 제자리다. 무슨 매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제주의 쌀’이자 겨울 제철 과일인 감귤이 위기다. 감귤은 자식교육을 시키는 효자 작목이라는 의미에서 한때 제주도에서 ‘대학나무’로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수입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고, 10여 년 동안 계속 된 감산 등 구조조정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제주도는 1997년 사업비 9억원을 들여 31.4㏊의 감귤밭을 폐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3년간 1339억원을 들여 4777㏊의 감귤밭을 갈아엎고 다른 작목을 심도록 했다. 10년간 감귤류를 재배하지 않는 조건으로 3.3㎡당 2000~8000원의 보상비를 농민에게 지급했다. 감산을 위해 재배면적을 줄이는 고육책이었다. 2003, 2004년엔 1127억원을 들여 3882㏊의 감귤밭을 없앴다.

 2003년 2만4560㏊이던 제주도의 감귤 재배 면적은 현재 2만898㏊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 새로 조성되는 감귤밭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산량도 2003년 64만6000t에서 지난해 74만1000t으로 늘었다. 돈만 들이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제주도는 감산을 농가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다고 최근 밝혔다. 생산량을 줄여 감귤값을 올리기 위해 행정기관이 나서던 관행을 중단하겠다는 뜻이다. 제주도는 감귤 수확시기가 되면 ‘농가 일손돕기’란 명목으로 공무원을 동원해 열매솎기를 했다. “공무원이 농사를 대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 일시 중단했다가 농민 여론을 봐서 다시 나서곤 했다.

 고성보 제주대(농업경제학) 교수는 “가격폭락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차원에서 관이 개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치더라도 땜질 처방에만 매달릴 뿐 중·장기적인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민은 고품질 감귤 생산에 주력해야 하고 행정은 유통기획과 품종개발에 전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감귤은 풍·흉작에 따라 가격등락을 반복하는 특징을 보여왔다. 74만7000t이 생산된 2007년 제주의 감귤 총수입은 4319억원이었으나 59만2000t이 생산된 2008년에는 6313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브랜드 감귤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5년여 전 제주감귤농협이 서귀포 지역 600여 농가에서 엄선한 감귤만을 골라 시장에 내놓은 ‘귤림원’ ‘불로초’ 브랜드 감귤이 소비자에게서 호평을 얻고 있다. 농민들은 해거리 현상과 관계없이, 다른 감귤을 생산할 때보다 2~3배 높은 값을 받는다. 현상봉 제주감귤농협 유통담당은 “당도 등 품질관리 면에서 고품질 차별화 전략을 펼친 게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강경선 제주농업발전연구소장은 “감귤나무를 유행처럼 심던 때가 1960·70년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나무의 노쇠현상이 나타날 때가 됐다”며 “품종 개발과 더불어 개별 농가에 대한 경영진단, 고품질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기술의 표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제주 감귤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수입 오렌지와 달리 생과일 시장에서 경쟁해 왔으나 주스 시장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제주하이테크산업진흥원과 ㈜백록담은 올해 초 감귤막걸리를 공동 개발했다. 초콜릿·젤리·와인 등 감귤을 이용한 가공품은 7~8년 전 제주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았다. ㈜고베시, ㈜아쿠엑스코리아는 감귤을 주스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인 ‘감귤 박’을 친환경 고형 연료인 ‘귤탄’으로 만들었다. 쓰레기로 버려지던 감귤 찌꺼기를 신재생 청정에너지인 ‘감귤 숯’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감귤 아이스크림도 개발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제주시 영농조합법인 ‘후레쉬제주’는 감귤 생즙 60%가 함유된 아이스크림 1200t을 올해부터 5년간 미국으로 보낸다.

제주=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영하

 ◆제주감귤=단일 품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감귤은 110여 종이 넘는 과수작목이다. 제주감귤은 조선시대 조정으로 올려지는 별공(別貢) 진상품이었다. 사대부들이 감귤을 귀하게 여겨, 1526년 서귀포시 토평동에 국가과원인 ‘금물과원’이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제주도에 37곳의 국가과원이 만들어졌다. 대중화된 작목으로 감귤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인 1911년 에밀 타크 신부가 일본인 친구에게서 온주 귤나무 15그루를 넘겨받은 것이 효시다. 1950년대 재일동포에 의해 다양한 품종이 제주도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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