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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핵개발 원하면 해봐라, 중국은 핵경쟁 감당할 수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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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06면

후시진 총편집인이 13일 오후 환구시보 회의실에서 한·중 관계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박가영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 총편집인을 만난 지난 13일은 베이징에서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베이징 동쪽 차오양(朝陽)구 진타이시루(金臺西路) 인민일보사 정문을 통과한 다음에도 200여m를 걸어야 했다. 행정을 담당하는 여직원이 마중 나와 둘이서 걷던 도중,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이들이 구보하고 있었다. 인터뷰는 환구시보 건물의 3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오후 5시. 무슨 회의를 방금 마친 듯 바쁘게 들어온 후시진은 주머니에서 미리 들고 있던 명함을 바로 건넸다. 명함에는 두 개의 직책이 적혀 있었다. ‘인민일보 고급기자’ 아래에 ‘환구시보 총편집’이었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면서 녹음기를 켜자 환구시보 쪽에서 배석한 기자도 녹음기 하나를 역시 탁자에 놓았다. 긴장감 속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표시는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환구시보 사령탑 후시진이 말하는 중국인의 속내

-중국은 남북한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겉으로 ‘중립’을 외치며 피해자인 한국더러 무작정 참으라는 식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중립’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은 중국이 한국 편을 드는 것이 ‘중립’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중국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한반도의 문제를 바라본다. 한국이 생각하는 ‘중립’이란 게 뭔가?”

-중국은 천안함 사건 후에도, 연평도 포격 뒤에도 소위 ‘중립’을 유지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달랐다. 이번엔 북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르다. 중국은 ‘이익상관자’여서 소위 ‘중립’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매우 크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핑계’가 아닌가.
“한국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 중국과 남북한 3국은 모두 한반도 안정을 원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의 이익과 중국의 이익은 다르다고 본다. 이것은 한·중 간에 전략적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엄격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한국이 생각하는 중립과 다르다. 무엇이 중립인가? 그것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한국은 100% 북한의 도발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한국의 설명에도 문제가 있다. 한국은 북한의 도발이라고 하면서 왜 하필이면 (분쟁지역에서) 자주 군사훈련을 실시하는가? 거기에 대해 북한은 극단적인 반응을 한다. 전쟁을 싫어한다는 한국이 왜 자주 군사훈련을 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장황하고 길게 설명을 하면서 이따금 기자가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말을 시작하곤 했다.)

-당신은 계속 ‘중립’을 언급하는데, 사실 그것도 중국 국가이익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이익은 한국과 북한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은 한반도 안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환구시보는 ‘북한 공격설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입장은 여전한가.
“중국은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다. 증거가 없다. 한국 측이 제공하는 증거를 믿을 수 없다. 북한이 그런 첨단기술이 필요한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흔적도 없이 다시 ‘깨끗하게’ 사라질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수준은 중국도 갖고 있지 못하다. 환구시보는 그때 ‘북한이 외부세계의 의혹에 성의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는 북한이 그렇게 국제사회의 의혹을 푸는 것이 북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중국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과도한 해석을 했다. 중국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민간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공산당 지도부의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북·중 관계는 앞으로 바뀔 수도….(※기자의 질문을 막으며)
‘중·북 관계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를 흘렸다. 중국은 두 번 다시 한반도에서 피를 흘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한반도 안정을 추구하느냐에 대해선 중국과 한국의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중국이 북한의 잇따른 군사도발을 두둔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한국에선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대북 강경 자세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갈수록 감싸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 편을 들어달라는 것 아닌가? 중국은 그걸 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 한국이 연평도 사건 이후 미·일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동아시아에 신냉전 구도를 초래하는 것이다.”

-냉전시대의 친구인 북한을 버리지 못하는 중국의 생각이 오히려 냉전적 사고 아닌가.(※후시진은 줄곧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며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은 중국의 이웃이다. 두 나라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다. 한국은 왜 자꾸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을 선택하기를 원하는가? 이게 ‘중립’적인 태도인가? 만약 한국이 중국을 친구로 여긴다면 중국이 다른 친구와 교류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이라면 적어도 북한이 도발을 할 때 공개적인 비판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이 내부적으로 북한을 훈계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에 이런 비판을 흡수할 능력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같은 비판이라도 북한 정권은 견디지 못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중국 내부에서는 한국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중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한국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같이 앉아 있던 환구시보 기자가 책상에 있던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기자가 몇 가지만 더 묻겠다고 하자 일어서려던 후시진 총편집인이 다시 앉았다.)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북한이 우라늄 농축(HEU) 프로그램 개발까지 공개한 마당에 6자회담의 효용성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6자회담이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어느 한 국가의 책임 때문이 아니다. 중국은 북핵 개발을 제지할 능력이 없다. 북한의 주변 정세가 핵무기를 개발하게끔 몰아간 측면이 있다. 경제·군사적으로 낙후된 북한은 아마 핵을 가짐으로써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외부적 (위협) 요소가 존재하는 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한국 사회에선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없다면 자체적인 핵 개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한국이 핵 개발을 원한다면 한번 해보라. 북한에 이어 한국·일본도 핵을 개발하고…. 그럼 중국은 더 많은 핵무기를 갖게 되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변국들이 핵 경쟁을 할 때 발생할 불안정을 감당할 중국의 능력은 한국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중국은 대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말로 한반도 안정을 원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의 전략에 세뇌당해 스스로의 전략적 판단력을 잃은 것 같다.”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핵을 포기하도록 계속 설득할 것인가.
“핵을 가진 북한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을 막을 방법이 없다. 북한은 중국의 괴뢰가 아니다.”

-중국은 정말로 남북한 통일을 원하는가. 한국에선 중국이 내심 남북한 분단 상태를 원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적어도 입으로 지지한다는 말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있을지 몰라도 남북한 당사자들이 통일을 한다고 하면 반대할 수가 없다. 나는 궁극적으로 중국 정부가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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