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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주지사에 “I’ll be back” … 마지막까지 ‘입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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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CNN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를 진행해온 래리 킹이 16일(현지시간) 방송을 마지막으로 방송계를 떠났다. 이날 킹의 가족들이 출연해 마지막 방송을 함께했다. 왼쪽부터 장남 챈스(11), 래리 킹, 차남 캐넌(10), 부인 숀(51·사진 위). 클린턴 전 대통령(사진아래 오른쪽)은 ‘래리 킹 라이브’에 28번이나 출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5년 전 워싱턴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이 코너의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뭐라고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감사합니다. ‘안녕(good bye)’이란 말 대신 ‘다시 만납시다(so long)’가 어떨까요.”

 미국 CNN의 명물 인터뷰 코너 ‘래리 킹 라이브’의 래리 킹(77·사진)은 특유의 굵고 쉰 듯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한결같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천진난만한 눈빛도 변함없었지만 눈가는 젖어있었다. 킹이 인사를 마치자 스튜디오에 불이 꺼졌다. 카메라는 어두운 스튜디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구식 마이크를 조명했다. 쇼는 끝났다.

 ‘토크쇼의 전설’ 래리 킹이 16일 오후 9시(미 동부시간 기준, 한국시간 17일 오전 11시) 방송을 끝으로 CNN의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1985년 첫 방송 이래 25년 만이다.

 거장의 마지막 방송은 화상 통화를 통한 토크쇼로 진행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역대 출연자들이 화상 통화를 통해 킹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은 방송계의 거인”이라며 “당신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질문뿐’이라고 말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우리 세대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28번이나 출연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젊게 산다는 당신의 충고처럼 나도 계속 일하고 있다. 젊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무덤 신세는 면하고 있다”며 농담을 건넸다. 킹의 열성팬을 자처하는 슈워제네거 주지사가 “킹이 마지막 방송을 한 오늘을 ‘래리 킹의 날’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킹은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세요. ‘나는 돌아올겁니다(I‘ll be back·슈워제네거가 출연한 영화 ‘터미네이터’의 유명한 대사)’”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코미디언 프레드 아미슨이 킹의 트레이드 마크인 멜빵과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커다란 구식 마이크를 든 채 출연해 킹을 인터뷰하는 ‘깜짝쇼’ 순서도 있었다. 아미슨이 “25년간 당신이 던진 질문 중 최고의 질문이 무엇이냐”고 묻자 킹은 “‘왜’라는 질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왜라는 질문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한 마디로 답할 수 없게 한다”고 설명했다. “멜빵은 대체 왜 하고 다니느냐”는 질문에는 “죽는 날까지 멜빵은 계속 착용할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57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방송 생활을 시작한 킹은 라디오 토크쇼로 인기를 얻어 85년 ‘래리 킹 라이브’를 시작했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대담한 특유의 인터뷰 스타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전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방송돼 1억5000만 명의 시청자를 거느린 토크쇼의 진행자가 됐다.

 킹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까지 생존했던 미국의 모든 대통령과 대담을 나눴다. 그는 각국 정상과 정치인·연예인 등 25년간 4만여 명의 출연자를 스튜디오로 불러내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의 쇼는 최장 기간 같은 시간대 같은 진행자가 방송한 프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이번 하차로 킹이 방송계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앞으로도 매년 4차례 CNN에서 특별방송을 진행하고, 민간구호단체 활동에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킹이 떠난 자리는 영국 언론인 피어스 모건이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그램이 채운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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