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먹옷 입고 마애삼존불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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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걸린 서산 마애삼존불 탁본 앞에 선 조동원 명예교수. 조 교수는 깊은 산에 숨어있어 1959년에야 발견된 삼존불(국보 제84호)을 68년 탁본으로 남겼다. [뉴시스]

흑백의 점묘화가 된 ‘백제의 미소’는 푸근했다. 성균관대박물관(관장 이준식)은 16일 ‘탁본으로 보는 한국문양’ 특별전을 개막했다. 조동원(70)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탁본 450여 점 중 70점을 선별한 것이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부터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문양까지, 전시된 작품은 흑백으로 표현된 한국미술의 역사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초로 공개되는 서산 마애삼존불 탁본이다. 조 교수가 1968년 탁본한 작품인데, 지금껏 이런 탁본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조 교수는 “1968년만 해도 문화재 관리가 그다지 엄격하던 시절이 아니라 군청 공보실 허가를 맡고 작업할 수 있었다”며 “유물에 먹이 배지 않도록 한지를 3겹으로 붙이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뭘 모르는 이들은 한지를 한 장만 대고 탁본을 뜨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 2장을 대고, 습기는 30% 정도가 되도록 조절해야 먹물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평생 전국의 금석문(金石文)을 찾아 다니며 탁본을 떴다. 그렇게 40여 년간 연구한 결과를 모아 『한국금석문 대계』(전7권)을 20년에 걸쳐 간행한 바 있다. 최근엔 경주박물관이 소장한 남산신성비 등의 탁본을 떴다. 요즘엔 탁본을 뜨려면 문화재 자문회의를 열어 허락을 맡아야 하는 등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설령 당국의 허가를 얻는다 해도 유물 관리처에서 허락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경주박물관은 2008년 남산신성비 등의 탁본 작업을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유물을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 명성이 높아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탁본을 뜨면 그 형태를 판독할 수 있습니다. 서체를 알아보기에도 유리하고, 여러 사람이 나눠 공유할 수도 있지요. 자연히 매우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됩니다. 문양의 경우도 탁본을 뜨면 얼굴 표정이 살아나기도 하고요.”

전시에는 백제 무령왕지석, 왕비지석, 사택지적비 등 해방 이후 발견된 백제 금석문 탁본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문양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 탁본과 나란히 전시된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光背) 탁본은 굵은 불꽃문양 사이에 작은 부처가 조각된 모습이 닮았다. 경주 능지탑의 기단부 판석에 새겨진 12지신상, 김유신묘 12지신상도 비교해볼 수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의 봉황문 탁본 등 그 정교함에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작품도 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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