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적과의 동침’ 승부수 적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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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벼랑 끝에서 빼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승부수가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화당과 합의한 감세 카드가 경제 전문가는 물론 시장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지난달 초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차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시장엔 비관론이 팽배했다. 오죽하면 Fed가 국내외 비판을 감수하며 돈 풀기에 나섰겠느냐는 자조마저 퍼졌다.

 그런데 오바마의 감세 카드가 나온 뒤 분위기는 반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미국 이코노미스트 55명을 상대로 내년 경제전망을 설문한 결과 63%인 35명이 ‘당초 예상보다 내년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비관론에 앞장서 온 골드먼삭스조차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이와 달리 ‘더블딥(단기 회복 후 다시 침체)’ 가능성은 15%로 예측돼 올해 조사 중 가장 낮게 나왔다.

 증시 전망도 장밋빛이다. 블룸버그통신이 11명의 월가 전문가를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내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379로 지난 주말에 비해 11%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이후 3년을 기준으로 하면 53%가 올라 ‘닷컴 거품’이 부풀어올랐던 1997~2000년 이후 최대폭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채권 부도 가능성을 반영하는 미국의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도 13일 기준 9일째 하락했다. 이는 지난 13개월 동안 최장기 연속 하락 기록이다.

 기업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했다. 미 재무전문가협회(AFP)가 800여 명의 기업 재무전문가를 상대로 설문한 결과 43%가 Fed의 2차 양적 완화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세 명 중 한 명은 Fed가 내년 6월 말로 끝나는 2차 양적 완화 정책을 연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낙관론이 이처럼 확산하고 있는 건 오바마 감세 카드 덕분으로 분석된다. 애초 시장은 오바마와 공화당이 감세안에 합의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이로 인해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근로소득자의 소득세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27주 이상 장기 실업자에 대한 지원금도 끊길 판이었다. 그런데 오바마가 부자 감세안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악재가 초대형 호재로 탈바꿈했다. 특히 13개월 연장된 장기 실업자 지원금은 지급하자마자 지출될 가능성이 커 소비 자극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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