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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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종수
논설위원

지난달 북한군의 기습 포격으로 시커멓게 불타는 연평도를 TV로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우선 민간인을 향한 북한의 무차별 포격에 분노가 치밀었을 테고, 우리 군의 미흡한 대응에 실망감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슴 한편에선 북한의 무모한 도발이 자칫 전면전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염려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이야 말할 것도 없을 터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평화롭던 일상을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바꿀지 모르는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종북 좌파세력은 시민들의 이 같은 불안감에 편승해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경대응에 반대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전쟁의 위협을 실감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외신은 휴전선에서 불과 50㎞밖에 떨어지지 않은 수도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아시아판)은 최근 휴전선에 맞댄 파주에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LCD 공장이 들어서고 지난 10년간 인구가 80% 이상 늘어날 정도로 경제가 번성하고 있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르포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간다고 해서 시민들이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안하지만 우리 군의 전쟁 억지력을 믿고 그래서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보다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이 간절히 배어 있다.

 외신들이 극도의 안보위기 속에 한국인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에 비해 전쟁으로 잃을 것이 훨씬 많은 한국이 전쟁을 더 두려워하고 피하려 할 것이란 예상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끊임없는 북한의 도발 위협과 그에 따른 불안감 속에 오늘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지레 겁먹고 포기할 순 없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은 과연 우리가 지키려는 것이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물뿐이겠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은 고층빌딩과 아파트, 자동차, 첨단 공장보다 그러한 경제적 성취를 가능하게 한 우리의 경제시스템과 이념, 그리고 국민적인 의지가 아닐까. 건물과 공장은 부서지면 다시 지을 수 있지만 경제시스템과 이념이 무너지고, 국민의 의지가 꺾이고 나면 경제의 재도약은커녕 재건도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최근 건국 이후 한국경제의 성취를 기록한 『한국경제 60년사』 발간기념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경제 60년사』는 주요 국책연구원이 총동원돼 그동안 한국경제가 걸어온 발자취를 분야별로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방대한 분량의 책자에는 무엇이 한국경제의 경이적인 성취를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을 특징짓는 요소와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면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는 한국경제의 성공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줄 수도 없거니와, 다른 개도국들에 한국형 성공모델을 전수해줄 수도 없다.

 필자가 그 자리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한국경제 성공적 발전 요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한국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 남쪽에 미군이 진주했다는 우연적 선택의 결과이긴 하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택한 북한이나 다른 구(舊)동구권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경제 성공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국가지도자의 결단과 리더십이다. 한국경제의 성공신화는 뭐니뭐니 해도 60년대 이후 빈곤탈출과 산업화를 지상목표로 삼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과 리더십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했으나 산업화에 실패한 다른 개도국과 구별되는 결정적 요인이다. 셋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집약적 산업전략이다. 개발연대에 부족한 자본을 선도기업에 집중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군을 키워낸 것 또한 한국경제 성공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믿는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한국경제 성공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경쟁과 책임을 근간으로 삼는 신(新)자본주의 발전론’을 담은 책자를 보내 왔다. 앞으로 학계에서 활발한 논의를 통해 진정한 한국형 발전모델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지난 한국경제 60년은 후대에 물려줘야 할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임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두려움 없이 맞서 지켜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