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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건강 공동체, 의료생활협동조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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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병원을 세운다. 주민들이 모여 건강강좌를 열고 정보를 공유한다. 산악회, 걷기모임과 외국어 강좌, 음악미술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함께 행복한 삶을 나눈다. 바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다. 성남, 용인의 의료생협을 둘러봤다.

언제든 믿고 찾아갈 수 있는 가족 주치의

성남의료생협 조합원인 주부 양정해(51성남 서현동)씨는 올 초 3개월간 우리한의원(성남시 신흥3동)에서 허리 치료를 받았다. 집 근처 한의원을 두고 양씨가 우리한의원을 찾아간 것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서다. 중국산 약재를 비싼 값에 사는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를 받는 동안 양씨는 의사와 여유롭게 건강 상담을 할 수 있었던 게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아픈 증세만 이야기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너무 말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은 상담을 했다”고 전했다. 성남의료생협은 2008년 시작했다. 설립 2년 만인 올해 2월 8일 조합원이 모은 돈으로 우리한의원을 열었다. 조합원도 꾸준히 늘었다. 11월 1100여 명이 조합에 가입했으며, 1가구 당 1만원 이상인 출자금도 1억7000만원을 넘었다.

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병원이지만 조합원이 아니어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외적으로 볼 때 조합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한약 처방 등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의 10% 할인 뿐이다. 대신 조합원들은 우리 한의원에서 주기적으로 건강 전반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어서 평소 어렵게만 느껴지던 의사와의 진료시간이 편해진다. 자신의 주치의로 삼는 셈이다. 박재만 대표원장은 “단순 검진 외 운동, 먹을 거리 등 삶 전체에 걸쳐 건강을 챙겨주는 게 병원 목표”라고 말했다. 진료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7시, 토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4시다. 매주 화, 목요일 주 2회 야간진료도 한다.

건강정보 전달도 의료생협의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주민건강강좌를 정기적으로 연다. 지역 내 사회복지관, 경로당이나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 방문진료 활동을 하기도 한다. 산악회, 걷기모임, 역사문화답사회, 독서모임, 영화모임, 일어모임 등 소모임을 통해 조합원들끼리의 교류도 이어가고 있다.

▶ 문의=031-755-9752

이웃과 함께 만들어 가는 건강한 사회

권성자(48용인 신갈동)씨는 매주 수요일이면 용인 해바라기의료생협(용인 신갈동)에서 손으로 인형을 만든다. 그가 해바라기의료생협의 만들기 강좌에 참여한 것은 지난해부터. 처음에는 의료생협이 무엇인지 생소했다. 1가족 당 1만원이라는 출자금을 내면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막연했다.

이제 1년 남짓 천연비누, 인형만들기 교실에 참여하고 장애아들과 걷기운동에 나서면서 권씨는 이웃과 함께 하는 재미를 배워가고 있다. 그는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우리 동네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며 미소지었다.

이 곳은 2007년 320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했다. 내 아이의 안전을 나 혼자 힘으로 지킬 수 없는 것처럼 질병도 지역사회, 공동체가 함께 지켜가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해바라기의료생협 조합원에게 치료는 최후의 수단이다. 병이 생기기 전 예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조합원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꾸준히 개최한다. 치료를 할 때도 항생제 사용은 줄이고 스스로 낫도록 해야 한다고 여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먹을 거리, 환경도 중요하다. 해바라기의료생협은 유기농제품 매장인 녹색가게를 운영한다. 용인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직거래로 판매한다. 소모임도 활발하다. 현재 걷기, 산행, 영어, 관현악, 인형만들기 등 7개 소모임이 운영된다. 리류남귀 이사는 “주민들이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지켜갈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일이 결국 의료사업”이고 설명했다. 특수아동센터지역아동센터에서 장애아어린이 돌봄사업도 하고 있다. 올해 용인시에서 두 번째로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해바라기의료생협에는 현재 63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내년에는 병원을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 문의=031-282-0791

# 의료생협=지역주민에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한 삶을 지켜나가고자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해 설립한 비영리 보건의료협동조합이다. 건강은 아플 때 받는 치료만이 아닌 평소 삶에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보고 조합원들의 질병 예방, 조기 발견, 보건 교육 등의 활동을 한다.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조합원이 되면 1만~3만원의 출자금을 낸다. 탈퇴할 때 돌려받을 수 있다.

[사진설명] 우리한의원의 박재만 대표원장, 장지혜 성남의료생협 이사장, 장윤기 간호실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곳은 성남의료생활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모은 돈으로 세운 병원이다.

<신수연 기자 ssy@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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