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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큐레이터, 관객 수천 명 모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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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어린이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직접 기획한 전시회 ‘왠지 끌림’에서 양지원양이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몇 달 전 동물원에서 독수리를 봤는데, 먹이를 사냥하는 데 쓰는 발톱이 ‘포크’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죠.”

 12일 오전 전시회 ‘왠지 끌림’이 열리고 있는 서울 송파구 송파어린이도서관 3층 전시실. 포크로 그려진 독수리의 발톱이 소시지를 찍는 모습을 표현한 입체작품(작품명 ‘내가 누구일까요’) 앞에 관람객들이 몰렸다.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장예린(서울 고명초등5)양이 작품 설명에 여념이 없다. 이명훈(6)군이 “그림이 튀어나와 진짜 소시지 같은데 뭐로 만든 것이냐”고 묻자 “지점토를 붙여 굳은 다음에 물감으로 채색한 것”이라고 답한다.

 관람객들은 어린이 작가의 작품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의준(40·자영업)씨는 “아이들 그림만 모아 놓은 전시는 많이 봤지만, 어린이들이 직접 전시회를 기획해 전시까지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전시회 ‘왠지 끌림’은 7월부터 이 도서관에서 무료로 진행된 ‘나도 큐레이터’ 수업을 들은 어린이 큐레이터 7명이 5개월간 준비해 24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하루 평균 100여 명. 주말에는 300여 명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초등학생이 많이 찾는다.

 고영화(36·여)씨는 “먼저 본 딸아이가 전시를 하고 싶다고 졸라 어떤 전시회인지 궁금했다”며 “그림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철학’이 담겨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교육을 담당한 황은화 작가는 “큐레이터의 역할과 미술감상법을 가르쳐 줬을 뿐 기획부터 작가 섭외와 전시까지 모두 아이들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못’ ‘놀이터’ ‘겨울’ 등 작가 6명의 작품 주제를 어우르는 제목으로 ‘왠지 끌림’을 정한 것도 아이들이다.

 양지원(서울 잠일초등6) 큐레이터와 엄재희(언주초등6) 작가는 ‘신발 연작’ 6점을 준비했다. 몰려든 관람객 앞에서 큐레이터가 “박지성 선수, 강수진 발레리나 등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들의 신발을 그린 것”이라며 “이 평범한 구두는 누구보다 애쓰는 우리 아빠의 신발”이라고 설명하자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관람객들의 호응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이은비(신천초등6)양은 “우리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이든이를 섭외하길 잘했다”며 “반 친구들이 전시회에 놀러와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아이들은 TV도, 컴퓨터게임도 포기하고 전시 기획에 힘을 쏟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예술의전당에 가고, 미술감상법과 관련된 책도 함께 읽었다. 노력한 덕분에 어린이들은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예린이는 “경복궁에서 어린이 해설사로 봉사할 만큼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문화재청장이 되고 싶었다”며 “그런데 이번 전시를 하면서 큐레이터로 꿈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정이든(신천초등6)양은 “미술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꿈을 뒷받침한 곳은 송파어린이도서관이다. 교육은 무료로 진행됐고, 재료비 50만여원도 이곳에서 부담했다. 도서관에서 열리는 전시여서 대관료도 받지 않는다. 조금주 사서는 “어린이들이 기획부터 전시까지 한 전시는 처음”이라며 “반응이 좋아 내년에는 좀 더 규모 있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4일 시작된 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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