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회장 12곳 이사, 이건희회장은 ‘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계열사 어느 곳에도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다. 현대중공업·두산·대림·신세계그룹의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오너)도 마찬가지다. 반면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무려 12개 계열사에 이사로 올라 있다.

 1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2010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35개 기업집단 중 30개 그룹의 총수가 1개 이상의 회사에 이사로 올라 있다. 이들은 평균 5개 회사의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삼성 등 5개 그룹 오너는 왜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까.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은 2008년 차명계좌 문제로 이건희 회장이 퇴임했기 때문인 것 같고, 현대중공업은 오너인 정몽준 의원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두산그룹은 동일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대림과 신세계는 동일인의 2세로 경영의 무게중심이 옮겨졌기 때문 아니냐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대기업집단 총수들이 계열사 등기이사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총수들의 등기이사 선임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실질적으로 계열사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면서도 등기이사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경영상·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의 뜻에 따라 총수들이 대거 이사회 명단에 올랐지만 이사회 참석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당시 재계에서는 “그룹 회장이 각 계열사의 이사회까지 참석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총수가 주력 계열사 이사에 등재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회사에 이사로 이름을 올리면 실질적으로 이사 노릇을 하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