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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먹튀’ 비난 앞서 배울 건 배우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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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24면

2007년 초반쯤으로 기억된다. 초대형 금융회사인 HSBC는 10조원의 부실여신 상각 계획을 발표했다. 위기의 전운조차 감지하기 힘들었던 시점에 나온 발언이다 보니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혼자 너무 튀는 게 아니냐고 빈축을 살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장 반응은 근시안적(myopic)이었다. 1년 만에 글로벌 금융공동체는 미증유의 패닉에 빠졌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HSBC 경영진의 판단은 선제적(preem ptive) 조치의 일환이었다. 대형 금융그룹의 자산 총액은 연결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1000조원 전후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총자산이익률(ROA) 1%를 달성하면 세계적 금융회사로 손색이 없다. 따라서 10조원 규모의 상각은 한 해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메가톤급 폭탄선언이었던 셈이다. HSBC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여타 금융그룹들과 마찬가지로 한 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어도 위기의 진원지는 되지 않았다. 시장을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악순환(vicious cycle)의 고리를 끊겠다는 고민의 흔적은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게 만든다.

충당금 적립(provisioning)이란 경험 손실률에 비추어 부실자산의 일부분을 못 받는 돈으로 미리 규정하는 회계방식이다. 당연히 당기순이익을 계산하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다. 우리나라 금융회사와 선진금융회사를 비교해 보면 이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우리는 잘 벌다가도 한 방에 몇 년치 이익을 날려버리는, 이른바 이익의 변동성이 매우 높다. 미국·영국 등 선진 금융회사의 이익 변동성은 매우 낮다. 최근의 금융위기만을 놓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동일한 환경 하에서 경쟁하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끼리 비교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SC제일·씨티·외환은행 등 외국계은행은 이익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트렌드를 가지면서 매년 성장한다. 기타 국내은행들은 이익규모가 큰 해도 많지만 적자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할 때도 있다. 국내 대형은행들이 2조여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던 해에 SC제일은행은 2000억원 수준에 머무르는 초라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영국의 본사에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자산 포트폴리오 또한 안정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계속 지금처럼 잘해주기 바란다”고 경영진을 격려했다고 한다. 우리 같으면 방 빼야 할 분위기인데 말이다.

선진금융기법의 왕도는 없다. 다만 국내 외국계은행들의 경영방식으로 본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관리다. 아무리 정교한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한다 해도 비체계적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운(運)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평판, 자본금 규모 등 간접적인 요인들에 의해 희석될 수 있다.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먹튀’라며 론스타를 비난하지 말고 우리가 진정으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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