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속 유익균이 건강 좌우, 속 편해야 몸도 편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6호 18면

한방에는 속이 편해야 전신이 건강해진다는 얘기가 있다. 턱에 난 뾰루지, 각종 피부질환과 두통까지 모두 장이 건강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양방에서도 비만과 비염, 아토피와 여성질환 등이 장의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박동일 교수는 “장에는 세포 수보다 훨씬 많은 균이 살고 있다. 우리 몸의 영양성분은 위로 들어와 장에서 최종적으로 흡수돼 온몸으로 퍼진다. 장이 건강하지 않으면 영양성분을 잘 흡수하지 못하고, 나쁜 균은 거르지 못해 온갖 질병이 생긴다”고 말했다.

당신의 장은 튼튼합니까

세균·유해물질 침입 막아줘
장의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는 ‘유익균’이다. 장을 막처럼 싸고 있는 수십억 개의 유익균은 여러 기능을 한다.

먼저 외부에서 침입한 균이나 이물질이 몸 속으로 퍼지지 못하게 막는다. 유익균이 줄면 장의 세포와 세포 사이를 촘촘하게 만드는 뮤신이라는 물질이 줄어든다. 이 성분이 줄면 위에서 처리하지 못한 유해성분이 장을 통과해 그대로 온몸으로 퍼진다. 혈액을 타고 전신을 돌면서 각종 질환을 일으
킨다.

유익균은 지방대사 기능도 한다. 장으로 들어온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대사시켜 혈중으로 들어가는 양을 조절한다. 유익균이 줄면 지방과 콜레스테롤 혈중 함량이 높아져 고지혈증,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일으킨다. 면역작용도 한다. 장의 유익균은 다른 기관에서 만들어진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다시 내보내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유익균 수가 줄면 면역세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몸은 점점 허약해진다.

그런데 현대인의 장 속에 있는 유익균이 점점 줄고 있다. 올 3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권위자인
미국 에머리의대 앤드루 게월츠 교수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인의 장내 유익한 세균 비율이 50년 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원인은 ‘항생제 남용’. 나쁜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한 항생제가 유용한 세균도 함께 죽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항생제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고, 식용 가축에게 먹이는 사료에도 대부분 항생제가 들어있다. 게월츠 교수는 염소로 소독된 식수, 살충제가 남아 있는 과일과 채소, 방부제가 든 가공식품, 정제된 당분이 든 탄산음료도 장내 유익균 수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유해균의 증식이 방치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제산제의 잦은 복용이다. 위산은 유해균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데, 제산제 복용으로 위산이 자꾸 중화되다 보면 유해균 수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스테로이드와 피임제 같은 호르몬제도 유해균 증식을 촉진한다.

제왕절개 아기들은 유익균 부족
유익균이 줄면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 먼저 아토피·비염·천식 등의 알레르기성 질환이 늘어난다. 이런 질환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제왕절개 분만의 증가를 꼽는 전문가들이 있다. 아기는 산모의 질을 통해 태어나면서 질 벽에 살고 있는 유익균을 물려받는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은 배의 절개된 부분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질 벽에 사는 유익균을 받을 기회를 잃는다. 장내 유익균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채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1999년 미 소아소화기영양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의 장에는 유익균 수가 훨씬 적었고, 유해균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아기와 산모의 항생제 사용이 느는 것도 원인이다. 장내 세균층이 활발하게 형성되는 생후 1년 안에 아기가 항생제를 복용하면 유익균이 만들어지지 않아 알레르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1983년 일본 소아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분유를 먹는 생후 1개월 된 신생아의 장내 비피더스균(유익균) 수는 모유를 먹는 신생아군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신생아는 엄마의 질로부터 한 번 좋은 균을 물려받고, 모유 수유 과정을 통해 또 한 번 좋은 균을 물려받는데, 분유를 먹이면 좋은 균을 얻을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

유익균이 줄면 비만의 위험도 커진다. 몇 해 전부터 네이처 등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서 장내 세균이 ‘비만 체질’을 만드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지방대사의 일부는 장내 세균이 담당하고 있는데, 유익균이 줄면 지방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쉽게 살이 찌는 몸이 된다는 것이다. 핀란드 터쿠대학병원 소아과 마코 칼리오마키 박사는 2008년 이를 입증한 연구결과를 미국 임상영양학회지에 발표했다. 그는 비만 아이들을 7년간 추적 관찰해 대변 속 세균을 분석했다. 그 결과 비만 아이들은 정상 체중인 아이의 대변에 비해 장내 유해균인 스타필로코쿠스의 양은 현저히 많았고, 유익균인 비피더스균은 훨씬 적었다. 연구진은 유아기 때 장내 유익균 비율이 낮고, 유해균 비율이 높은 아이들은 성장 후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2006년 네이처지에 실린 연구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의과대학 유전자연구센터 소장 제프리 고든 박사팀은 다른 환경요인은 같게 한 뒤 비만 쥐의 장내 세균을 정상 쥐의 장에 다량 이식했다. 결과에선 같은 식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 쥐의 몸무게가 늘어 비만 쥐가 됐다. 고든 박사팀은 유전적·환경적 변화 없이도 장내 세균 구성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비만해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영국 임페리얼대 제로미 니컬슨 교수는 비만한 쥐에게 유익균을 주입해 지방분해를 유도시켜 정상 무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 밖에 장 건강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과민성대장증후군(설사와 변비가 반복되는 증상), 크론씨병, 대장암 등도 유익균 수 감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한식 위주 식단이 장 건강에 좋아
장내 유산균 수를 늘리려면 유익균이 많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발효식품에는 유익균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간장, 된장, 청국장 등 발효식품을 베이스로 한 음식이 많다. 한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면 유익균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가 호주 시드니대학병원 연구팀과 성인 7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한식에 풍부한 유산균이 장내 유익균을 늘려 비만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산균이 많이 든 가공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좋다. 대장항문 전문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은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도 발효요구르트는 설사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괜찮다”고 말했다. 단, 위에서 위산에 의해 유산균의 파괴되는 양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급격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산균만 분리시켜 만든 유산균 제제도 좋다. 건강기능식품이나 약품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