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현대건설 인수전…점점 수렁으로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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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현대건설 인수전이 갈수록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입찰에 참여한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연일 고소ㆍ고발과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0일 현대건설 매각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의 김효상 여신관리본부장 등 실무자 3명을 입찰방해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또 이들 3명과 외환은행에 대해 총 5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그룹 측은 “피고발인 3명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양해각서(MOU) 체결, 현대그룹의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대출금 1조2000억원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 과정에서 매각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주주협의회가 현대그룹에 대출계약서 대신 내도 된다고 한 텀시트(Term Sheet)는 구속력이 없는 예비문서로, 계약의 전체 내용을 보여줄 수 없으므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주주협의회가 현대차그룹의 협박ㆍ압력에 굴복해 MOU 해지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현대그룹의 배타적 우선협상권을 보전하려고 신청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입찰 규정과 법이 정한 바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막가파식으로 주주협의회와 관련기관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등의 거친 표현도 사용했다.

외환은행 측은 두 그룹의 법적 조치에 대해 “미리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ㆍ투명하게 매각을 진행해왔다”며 “법률 검토를 한 뒤 대응방안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두 그룹 못지 않게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부에선 “현대차그룹이 외환은행 예금을 빼간데 이어 담당 임직원 3명을 검찰에 고발까지 한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처사”라는 주장이 나온다. 현대그룹에 대해서도 “당장 MOU를 해지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가처분 신청부터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주주협의회가 MOU에 따라 요구한 대출계약서를 먼저 내는 게 순서”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 등 현대건설 주주협의회는 ‘텀시트’ 부분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주주협의회 관계자는 “대출계약서에 비밀보호 유지조항 등이 있을 경우 계약서 자체를 낼 때 문제가 될 수 있어 계약 내용을 볼 수 있는 구속력 있는 서류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환은행을 포함한 현대그룹 채권단은 현대그룹 재무구조 개선약정과 관련해 13일께 현대그룹에 대한 채권단의 공동 제재를 중단하라는 법원의 기존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 현대그룹이 “일단 약정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협의부터 하자”며 당장 체결할 순 없다고 거부한데 따른 조치다.

매각 제대로 될까

현대건설 인수전이 소송전으로 비화되자 금융권에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그룹이 14일까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대출계약서 등을 내지 않는다면 주주협의회는 MOU 해지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MOU 해지는 주주협의회에서 의결권 80% 이상이 찬성하면 가능하다.

이 경우 현대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를 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이 바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MOU가 해지될 경우 현대그룹이 다시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크고, 주주협의회 입장에선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매각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익명을 원한 금융권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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