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Global] 세계적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장남 Donald Trump J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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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월드, 트럼프타워, 트럼프호텔….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은 부동산과 동의어가 됐다. 미국 최대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64) 트럼프그룹 회장은 뉴욕을 중심으로 거대한 부동산 왕국을 세웠고, 이젠 트럼프 브랜드를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다. 이 유명한 이름을 쓰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트럼프 회장의 3남2녀 중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33) 수석부사장이다. 올해 서른셋인 그는 “비즈니스 경험도 33년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태어날 때부터 사업을 배웠다는 뜻이다. 200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하고 트럼프그룹에 입사했으니, 정식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지는 10년이다. 매경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그를 만나 세계 부동산 시장의 흐름,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 대해 들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금융위기로 세계 부동산 경기가 불황이다. 명문 부동산 재벌가는 글로벌 부동산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부동산을 ‘일반론’으로 보는 걸 싫어한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런 시각이 부동산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의 실체를 보지 않고 종이 위에 올려진 숫자로만 인식하는 ‘스프레드시트 게임’이 지금의 위기를 야기했다. 부동산을 숫자로만 보면 사소한 뉘앙스를 읽을 수 없다. 부동산은 우편번호, 개별 블록마다 다르고, 심지어 도로의 동쪽과 서쪽에 따라 다르다. 서울 시내 중심가와 휴전선 가까운 곳을 놓고 ‘한국 부동산’이라고 묶을 수 있냐. 노(No), 절대 아니다.”

●이번 위기로 인해 부동산 투자 방식에 변화가 올까.

 “사람들이 다시 부동산의 위치, 퀄리티, 신뢰도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벽돌, 시멘트 같은 건축자재와 기법 같은 외형적 특징까지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뭐가 잘못되겠어’ ‘땅은 한정돼 있으니 오르겠지’ 하는 잘못된 생각들이 많이 수정될 것이다.”

●부동산 불패론이 끝이란 말인가.

 “2004년처럼 20일 동안 50% 수익을 올리는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에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까운 미래일 것 같지는 않다. 무한대의 자본과 무한대의 시간이 있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수익이 ‘0’ 이상이라고 가정하면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게 상식에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게 상대적 가치 게임이다.”

●모든 게 기회비용의 문제라는 뜻인가.

 “한정된 시간에 자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즉 자본의 기회비용은 상당히 크다. 부동산은 장기전이다. 현금 유동성이 적다. 마음대로 들어갔다가 원하는 때 마음대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의 평범한 딜에 자본을 투자하면, 내일의 큰 딜을 놓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사이드라인에서 기다리거나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①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라스베이거스’ ② 미국 뉴욕 맨해튼의 오피스 빌딩 ‘월스트리트 40번가’ ③ 미국 시카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 타워 시카고 ④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의 오피스·주거 겸용 빌딩 ‘트럼프 타워’

●부동산 투자의 황금률이 있는가.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산다. 역사적으로 트럼프그룹이 진행한 최고의 딜은 이럴 때 나왔다. 모두가 사고 싶어서 안달할 때, 예컨대 입찰경쟁에서 이기면, 그건 과연 이긴 걸까 진 걸까? 나는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자를 이기는 데만 골몰해 오직 이기기 위해 더 비싼 가격을 베팅하면 부동산의 진정한 가치를 잊게 된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때가 모든 레버리지와 카드를 내 손에 쥐고 있을 때다. 거래를 진행할지 말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후 문제는 창의성이다. 부동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이디어를 짜내는 게 건물의 성패를 가른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는 불안하지 않을까.

 “내가 처음 하는 말이 아니다. 워런 버핏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남들이 절약할 때 욕심 내고, 남들이 욕심 낼 때 절약한다’고. 무리를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건 승산이 적다.”

●그렇게 자신을 믿을 수 있는 힘은 뭔가.

 “건물의 벽돌과 시멘트까지 이해한다는 점이다. 시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동산의 물리적 구조까지 이해하면 잠재력을 읽을 수 있다. 부동산업에서의 기업가 정신은 그런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거기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교한 작업이다. 내게 부동산은, 빌딩을 사서 깔고 앉은 뒤 알아서 잘 되겠지, 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부동산을 머니 게임으로 만들어버린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얘기다.”

●‘가치 투자’에 성공한 사례를 들어줄 수 있는가.

 “1990년대 중반 아버지는 맨해튼 월스트리트 40번가에 있는 75층짜리 빌딩을 100만 달러에 샀다. 당시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 모두 빌딩을 처분하는 데 급급했다. 아버지는 건물 주인에게 크게 인심 쓰듯이 건물을 인수했다. 훗날 500만 달러에 팔라는 제안도 들어왔는데 거절했다. 전 주인은 부동산을 활용해 가치를 창조할 전략이 없었고, 아버지는 그 건물의 잠재력을 봤던 게 차이다.”

 미국 사업에 집중했던 아버지와 달리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 브랜드를 세계 곳곳으로 확산시키는 데 관심이 많다. 트럼프그룹은 부동산 업계에서는 흔치 않게 브랜드 전략에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고급 업무용 빌딩, 고급 주택, 호텔, 골프장 등 럭셔리 부동산을 개발·운영하거나 로열티를 받고 이름을 빌려준다.

●어느 나라 부동산 시장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특히 이머징 시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중동엔 굶주린 자본이 꽤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도 럭셔리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관심이 많다. 중국 시장에 들어갈 기회는 많이 있었는데,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우리에게 딱 맞는 딜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게 트럼프 스타일인가.

 “우리는 퀄리티에 목숨을 건다. 추구하는 모든 요소가 100% 들어있지 않으면 그 딜은 하지 않는다.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 든 30년간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드느니, 안 하는 게 낫다.”

●투자의 관점에서 한국 시장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은 트럼프그룹이 미국 밖에서 처음 사업을 펼친 곳이다. 2000년대 초 대우건설이 서울 여의도에 세운 트럼프월드는 트럼프 브랜드를 국제적으로 사용한 첫 사례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모두 6개의 프로젝트를 했다. 한국은 매우 성숙하고, 고급스러움을 이해하는 시장이어서 관심이 많다. 오피스 빌딩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본다. 오피스가 잘 되면 주택 시장도 커지게 마련이다.”

●리스크는 뭔가. 더블 딥(이중침체)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리스크는 어디에나 있다. 그걸 줄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다시 찾아온다면 특정 자산 유형, 특정 지역에 올 것이다. 어떤 곳은 빨리 회복할 것이고, 어떤 곳은 더딜 것이다. 나는 총체적으로 어려워지는 ‘최후의 심판일(doomsday)’ 시나리오는 별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버블도 어디에나 있다. 사이클의 변동이 얼마나 급격한지, 얼마나 잦은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리스크가 모두 없어지길 바란다면, 부동산 개발이라는 분야를 잘못 택한 것이다.”

●부동산을 볼 때 관심 포인트는 뭔가.

 “건물에 따라 다르지만 우선은 위치다. 단순히 인기 있는 위치냐, 아니냐가 아니라 위치의 잠재력을 본다. 최상의 위치일 필요는 없지만 뭔가를 창조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최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럭셔리, 퀄리티, 최고라는 트럼프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트럼프식 혁신에는 어떤 것이 있나.

 “트럼프그룹은 오랫동안 업계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아버지는 생활편의 시설을 넣은 아파트를 처음 선보였다. 20~30년 전 콘도미니엄에 운동시설, 수영장, 호텔급 서비스를 처음 넣은 사람이 아버지다. 그런 창의적인 서비스는 이젠 고급 주택 시장에서 하나의 법칙으로 자리 잡으면서 웬만한 아파트에까지 일반화됐다.”

●미래의 부동산 트렌드는 무엇일까.

 “환경과 관련된 부분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럭셔리 분야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최종 사용자에게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건축 단계에서 그런 요소가 반영되고 있다.”

●무엇이 당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는 수익으로 판가름 난다. 하지만 수익 때문에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아버지도 늘 말씀하신다. 지금의 트럼프그룹을 만든 건 수익을 좇아서가 아니라 열정 덕분이었다고. 나는 호텔 브랜드를 더 키우고 싶다.”

아들 트럼프가 보는 아버지 트럼프

“제 몫 못했다면 나도 잘랐을 것”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

“당신 해고야!(You are fired).”

 미 NBC방송의 리얼리티쇼 ‘견습생(The Apprentice)’에서 트럼프그룹의 도널드 트럼프(64) 회장이 던지는 말은 유행어가 됐다. 2004년부터 진행자 겸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트럼프 회장은 프로그램의 인기 덕에 부동산업계 거물을 넘어 명실상부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1960년대 말 뉴욕에서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부친의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산층을 위한 임대아파트 사업을 했던 아버지와 달리 트럼프 회장은 고급 주택과 건물로 눈을 돌려 트럼프를 명품 브랜드로 키웠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33) 수석부사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부동산업에 들어온 이유는.

 “나는 매우 독특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보통 아이들이 아버지와 마당에서 공을 찰 나이에 나는 아버지와 건설 현장에 다녔다. 기중기·불도저·트랙터 같은 중장비를 구경하고 타보는 재미가 컸다. 남자 아이들의 ‘로망’인 이런 기계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건 매우 강렬한 경험이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임대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유전적으로 부동산에 열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제2의 천성이 개발되는 것 같다.”

●다른 회사에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을 텐데.

 “워낙 트럼프그룹에 섹시한 프로젝트가 많아 다른 곳엔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를 고용하기 위해 회사 돈을 허투루 쓸 사람이 아니다. ‘당신 해고야’라는 매몰찬 대사를 잘 알지 않나. 내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자기 비즈니스를 희생할 사람이 아니다. 내 몫의 일을 해내지 못했다면 회사에 발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5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일을 배웠다고 하는데, 당신은.

 “나는 서른셋인데 33년간 비즈니스를 한 것 같은 느낌이다.(웃음) 태어나면서부터 할아버지·아버지에게서 일을 배운 것 같다. 할아버지는 일밖에 몰라, 그와 대화하려면 비즈니스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일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아버지는 늘 ‘네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 7일 24시간 일하는 모습을 나와 형제들에게 보여줬다. 디테일에 강한 것도 배울 점이다. 자기 일에서 가치를 더하기 위해선 몰입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아버지처럼 되기 싫은 건 뭔가.

 “어릴 때부터 비즈니스 현장에 따라다니면서 사업에 관한 관점은 비슷해 졌다. 차이점은 1970년대에 일을 시작한 아버지와 2010년의 나는 가정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 못지 않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됐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더 맞추고 싶다.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는 일에 덜 매이고 싶다.”

●사업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는 없는가.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아버지는 내가 주도하는 거래에서 내게 자율권과 결정권을 준다. 나는 보통 5~10개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데, 만약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아마 평생 싫은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 거다. 웬만해선 틀리지 말자고 다짐한다.(웃음) 그는 더 넓게 상황을 보기 때문에 그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쉽지는 않다. 나를 많이 신뢰하지만 내 결정을 ‘기각’할 때도 있다. 뭐, 상관없다. 내 결정에 따랐더라도 성공했을지, 아니면 실패했을지 말하기 어렵다. 결국 누가 맞고 틀렸는지 끝내 알 수 없다.(웃음)”

90년대 부동산 경기가 폭락하면서 트럼프 회장은 거의 파산지경에까지 갔다. 그때 10대였는데, 부동산업에 회의를 느끼지 않았나.

 “평생 부동산과 관련된 삶을 살아서인지 다른 생각은 안 들었다. 실수에서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이 가져올 수도 있는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다면 좀 더 안정적인 일을 찾아봤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서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그때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최근 경제위기에서 회사가 순항할 수 있었다. 비즈니스를 고르는 방식에서 신중해졌다.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 이후 해외에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해 안정적인 수익원도 만들었다.”

글=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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