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시시각각] 북한에 돈다발을 뿌린다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이철호
논설위원

#북한에서 탤런트 전원주(71)씨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한다. 홈쇼핑에 나와 벽돌까지 간다고 요란하게 선전한 믹서기 덕분이다. 국내 중급(中級) 믹서기가 중국 보따리 장수를 통해 그곳에 흘러들어가 대박이 났다. 북한 눈높이에 딱 맞는 100달러의 ‘합리적’ 가격이 무기다.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집에서 손질하는 북한에서 제일 요긴한 게 믹서기다. 뇌물 순위 1위이자 필수 혼수품이다. 전씨 얼굴은 이 믹서기 포장박스에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다. 북한 사람들은 믹서기를 고를 때 이렇게 묻는다. “그거 전원주거요?”

 #단둥과 신의주 지하에는 길이 11㎞의 ‘조중우호송유관(送油管)’이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이 파이프를 끊은 적은 없다. 다만 가끔씩 ‘기술적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중국은 ‘내부 수리 중’ 팻말을 걸고 원유 공급량을 확 줄여버린다. 공교롭게도 기름 파이프는 북한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고장이 났다. 2003년과 올해 2월 북한이 6자회담에 불응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성난 짐승 같은 북한을 다루기 어렵다”는 중국의 엄살은 믿기 어렵다. 송유관이 고장 나면 북한은 중국이 끄는 목줄대로 아무 군소리 없이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

 연평도 사태 이후 강공책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군사력을 앞세운 백배·천배 보복이 답일까. 나는 오히려 소프트 파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중국이 언제까지 북한의 난동을 두둔할지 의문이 생긴다. 중국은1989년 천안문 사태 때 국제 여론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당시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따라 베이징에 온 외신 카메라를 통해 무시무시한 유혈 진압 현장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중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서방의 경제제재까지 받았다.

 중국 다이빙궈(戴秉國) 일행의 방한에 대한 비판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칙사 대접을 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동선(動線)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처음으로 다이빙궈를 한국에 먼저 보낸 것은 한국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깔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보다 한국이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G2로 올라선 중국이 마냥 깡패 정권의 뒷배를 봐주기는 곤란하다. 힘의 외교로 수많은 친구를 잃는 것은 실리외교 원칙과도 어긋난다.

  연평도 대책들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국민의 변화를 거스를 수 있는 어떤 권력도 없으며, 북한 주민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북한 권력층과 북한 주민을 분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빌리면 북한은 이미 끝장 난 상태다. 단순 재생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하부구조(물질적 토대)가 망가진 이상 상부구조(정치·사상·문화)의 붕괴는 시간 문제다. 화폐개혁은 실패했고, 시장은 더욱 팽창하고 있다. 김정일 부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상대가 전원주일지 모른다.

 북한은 앞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장소·방법으로 기습 도발을 해올 게 분명하다. 당하는 입장에선 군사적 주도권을 쥐기 힘들다. 그렇다면 남쪽에서 속된 말로, ‘선빵’을 날릴 필요가 있다. 북한에 1달러짜리 돈다발을 살포하는 것은 어떨까. 비난 전단이나 확성기 대신 1달러짜리 지폐를 수북이 날려보내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직감적으로 어디서 날아온 돈인지 알 것이다. 북한 권력층에 현금을 갖다 받친 햇볕정책과 정반대로, 북한 주민을 분리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매년 9000억원 이상 쓰고도 일본인 요리사 한 명보다 훨씬 대북 정보에 깜깜한 국정원 예산을 전용하면 될 일이다. 또한 돈을 날려보내는 데 누가 트집잡을 것인가. 우리의 돈다발은 연평도의 북한 포탄과 선명한 대비를 이룰 것이다. 누가 전쟁광이고 누가 평화세력인지 확실히 보여줘야 중국도 움직일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대표적인 저강도전쟁(低强度戰爭)이다. 이럴 때는 군사적 대응보다 고도의 심리전으로 맞서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군사학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다.

이철호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