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한·미·일 대북 공조, 말보다 행동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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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한 사진 속의 한 장면이 있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국방장관이 판문점에 나란히 선 사진 말이다.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이 발생한 지 약 넉 달째 되던 지난 7월 21일이었다. 4인은 한·미 역사상 첫 ‘2+2 회담’을 열고, 판문점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4인은 공동성명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추가적인 공격이나 적대행위를 삼갈 것을 북한에 촉구하고, 무책임한 행동에는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비핵화 의지를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줄 것도 요구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용 원심분리기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게다가 민간인이 사는 대한민국 영토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한·미 외교·국방장관들의 그때 그 다짐과 경고는 어디로 갔는가. 자신들의 말에 실효성을 부여하기 위해 무슨 행동을 했는가.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다짐, 수단이 확보되지 않는 경고는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한·미·일 외교장관이 그제 워싱턴에 모여 연평도 사태와 북한의 UEP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공동성명에서 3국 장관은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고, 추가도발 시 3국이 연대해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 회동을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지금은 대화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도 촉구했다.

연평도 공격이라는 6·25 이후 초유의 사태를 맞아 한·미·일 3국이 공조를 과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다짐과 결의가 또 한번의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다음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한·미·일의 구체적 방책은 무엇인가. 중립을 표방하며 사실상 북한 편을 들고 있는 중국을 움직일 레버리지는 갖고 있는가. ‘전략적 인내’에 기초한 북핵 해법이 실패할 경우 대안(代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확실한 해답 없이 말로만 공조요, 공동대응이요 떠드는 것이라면 또다시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제공하는 공허한 말장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은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연일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확전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을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워싱턴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북한의 추가도발 시 한국의 군사대응을 미·일이 양해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도발 내용과 수위별로 구체적인 군사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군 수뇌부가 할 일이다. 오늘 열릴 한·미 양국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 긴급 회동은 그래서 주목된다. 한·미 양국은 여기서 논의된 결과를 조용히 실행에 옮기면 된다. 위기상황에서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중요하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미 양국 군 수뇌부는 진정한 공조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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