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갈 때 가더라도 우승하고 간다” 약속 지킨 안익수 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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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마십시오. 제 역할은 다 하고 가겠습니다.” 지난달 9일 안익수(45·사진) FC 서울 수석 코치는 한웅수 단장을 찾았다. 안 코치가 부산 아이파크의 신임 감독으로 결정됐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였다. 안 코치는 “부산 감독 역할은 서울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다음부터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안 코치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6강 PO부터 챔프전까지 한순간도 서울 선수단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은 챔프 2차전에서 제주를 물리치고 K-리그 정상에 올랐다.

 안 코치의 축구 인생은 ‘늦깎이 선수→공부하는 지도자’로 요약된다. 그는 문일고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또래들보다 출발은 한참 늦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격차를 좁혔다. 인천전문대 시절 그는 팀 훈련과 별도로 새벽과 야간 개인훈련을 했다. 2년 동안 별을 보고 훈련을 시작해 별을 보고 끝냈다. 그는 일화의 K-리그 3연패(1993~95)를 이끌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안 코치는 2001년 축구지도자 최상급인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 코스를 수료하며 지도자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2006년 여자 실업팀 대교를 맡아 2년 연속 3관왕을 달성했고, 여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지난해 여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국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올해 서울 수석코치로 옮긴 그는 수비라인을 책임졌다. 서울은 올 시즌 최소 실점 2위(26실점)를 했다. 그는 군기반장을 자처하며 서울에 부족했던 응집력과 집중력을 심어줬다. 시즌 초반 훈련 중 선수들이 집중하지 않자 훈련을 중단하고 “그늘에 가서 쉬어라. 훈련을 대충 하느니 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 선수들의 훈련 집중력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심판 판정에 자주 항의하던 김진규가 올 시즌 순한 양으로 변한 것도 “결국 너만 손해다”라는 안 코치의 계속된 조언 때문이었다.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을 벤치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안 코치는 “서울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끝냈다. 내일부터는 부산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안 코치와 서울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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