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포탄 떨어지면? 신세대는 스마트폰부터 꺼내 들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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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대학원생 홍진아(27·여)씨에게 집 근처에 북한이 쏜 포탄이 무더기로 떨어졌다는 가상상황을 주고 어떻게 대피할 것인지를 물었다. 홍씨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3층짜리 빌라에 살고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 승강장 전경. 북한의 도발로 전시가 되면 이 곳을 포함해 지하 1~5층 지하철 역사 시설물은 한꺼번에 1만4000여 명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그녀는 제일 먼저 스마트폰으로 네이버에 접속했다. ‘합정동 대피소’라고 입력했다. 그러자 합정동에 있는 헬스클럽·음식점 등이 나왔다. ‘대피소’라고 다시 입력했더니 ‘우리동네 대피소 찾기’란 블로그가 나왔다. 그 블로그는 국가재난정보센터 홈페이지로 링크돼 있었다. 홍씨는 너무 복잡해 스마트폰으로 찾기를 포기했다.

이번엔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다산콜센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합정동 사는데 전쟁이 나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평소에 지하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대피하라”는 답변과 함께 지하철 합정역과 인근 빌딩을 소개했다. 합정동 주민센터도 비슷했다. 119에 전화했더니 “국가재난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홍씨는 “아무래도 빌딩 지하보다는 지하철이 더 안전할 것 같다”며 “전시가 되면 그리로 가겠다”고 말했다. 홍씨가 집을 나와 합정역까지 걸어가는 데는 10분이 걸렸다. 하지만 역까지 가는 길은 빌라촌이라 숨을
만한 지하 공간이 확보된 데가 없었다.

서울시내 1등급 대피시설 전무
홍씨가 최종 피란처로 선택한 지하철역은 과연 안전할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2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위치한 왕십리역을 찾았다. 마침 지하 1층 고객센터에 김항용 5호선 역장, 기흥권 2호선 역장, 표화성 중앙선 역장 등 왕십리역 지하철 역장 세 명을 비롯한 관리책임자 10여 명이 모두 모였다. 역사 내 비상대피시설을 특별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왕십리역 지하철 3개 노선의 이용승객은 하루 7만3000명. 이곳엔 유사시 지하 1~5 층까지 대합실·승강장·통로 등에 1만4000여 명이 대피할 수 있다. 시청역보다 규모가 크다.

특별 점검 결과 시설과 장비는 양호했다. 휴대용 비상 조명등과 비상 전등, 통신시설 및 급수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지하 5층 승강장에만 산소공급기와 소화기, 방독면 25개씩이 비치된 장비함이 4개가 있었다.

문제는 장비함 안의 방독면 품질이었다. 2006년에 제작돼 내구연한(5년)이 거의 다 찼기 때문이다. 3일 찾아간 잠실의 한 동사무소 사정은 더 나빴다. 창고에 쌓여 있는 국민방독면의 제조일자를 확인해 보니 2001년 또는 2002년으로 적혀 있었다. 내구연한이 3, 4년씩 지난 것이다. 김환균 서울시 화생방팀장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친 국민방독면의 품질 불량 파동 이후 국비 보조가 끊기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왕십리역같이 유사시 대피시설로 지정된 곳은 전국 2만5000여 곳, 서울에 3919곳이 있다. 김혜경 서울시 민방위 담당관은 “연평도와 달리 서울 같은 대도시엔 지하철역과 대형건물의 지하층이 대피시설이라서 방공호를 지을 필요가 없다”며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 2~10시간가량 대피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1~4등급으로 나뉘는 대피시설 중 서울에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1등급 대피시설이 단 한 군데도 없다. 1등급 대피시설은 전시 지휘통제소 역할을 한다. 2주 이상의 비상식량과 비상급수가 확보돼야 한다. 지자체 측은 비용이 많이 들어 짓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1등급 대피시설은 전국에 10여 곳에 불과하다.

민방위 연령 상한 50→45→40세로

<2>김항용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장이 유사시 자체 축전기 전력으로 점등되는 비상 전등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3>김항용 역장(오른쪽)과 이을로 성동구청 민방위팀장이 지하 2층 장비 비치함에서 산소공급기를 꺼내 점검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전시 상황이 되면 전선이 아닌 후방에서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건 민방위대다. 현대전이 국가 총력전이 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화·생·방(화학·생물학·방사선) 무기 사용에 따른 민간인의 피해 위험이 커지면서 민방위의 중요성이 커졌다. 우리나라 민방위대는 1975년 9월 창설됐다. 창설 당시 민방위대 편성 대상은 17~50세 남성이었다. 88년 하한 연령이 20세로 올라가더니 2001년 상한 연령이 45세로 낮춰졌다. 2007년부터는 상한 연령이 다시 만 40세로 낮아졌다. ‘대규모 병력 대신 소수정예화를 추구한다’는 명목이었다. 대원도 최고 750만 명(88~2000년)에서 점차 줄어들어 최근에는 390만 명 수준이다.

민방위 업무를 맡는 조직도 축소일변도였다. 75년 내무부 내 민방위본부로 시작한 조직은 이후 민방위국(95년)으로 축소되더니 2004년 소방방재청이 생겨나면서 방재청 산하 민방위과 단위로 줄어들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안철현(51) 안철현위기관리연구소 소장은 “지자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민방위 동원령을 내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전시 주민 대피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물론, 주민대피 훈련도 실시하지 않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민방위제도가 뒷걸음질쳐 온 이유는 뭘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 진행된 ‘무장해제’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분석이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실용’ 노선도 한몫했다고 한다. 소방방재청이 2006년 펴낸 한국의 민방위 30년이라는 책자에는 ‘우리나라 민방위는 출범 시부터 전쟁억지를 위해 제도가 정립되다 보니, 남북화해협력시대에는 조직과 예산의 감축 대상이 되었고 민방위 훈련 무용론이 등장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을로(56) 성동구청 민방위팀장은 “민방위는 안보 문제인데 2004년 소방방재청 산하로 편입시켜 재난구조에 중점을 두도록 했던 건 당시 시대 상황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는 탱크가 필요 없으니 탱크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자고 하던 시대였다”고 말했다.

전 국민 개방형 민방위 지향해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민방위를 계륵처럼 여겨오던 국민 인식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덩달아 민방위 훈련장의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지난 3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서울 성북구 석관동 서울시 민방위교육장에선 피교육자 350여 명을 대상으로 실습 위주의 민방위 교육이 진행됐다. 30년 넘게 민방위 훈련 강의를 하고 있다는 김석용(63) 서울시 민방위 실기강사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위기의식을 느낀 탓인지 피교육자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강의시간에도 졸지 않고 뭐든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안 소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위기 관리는 정권이나 정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이제 일부만의 민방위가 아니라 전국민 개방형 민방위로 정책 방향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에선 주민 평균연령이 40세가 넘어 민방위대 구성이 안 되기 때문에 전 국민을 민방위 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 민방위를 하나의 조직으로 보지 말고 전 국민의 행동양식, 문화로 정착시키자”고 제안했다.

이 팀장은 “위기가 남성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닌 만큼 여성들에게도 생활형 민방위 교육을 해야 한다”며 “과거 교련 수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초등학생 때부터 안전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수·최준호·임현욱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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