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과 노벨문학상, 그리고 21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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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은 1959년에 소설로 쓰여졌고, 7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99년에 작가 귄터 그라스가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59 79 99, 9자 돌림으로 이어지는 숫자는 물론 계산된 것은 아니지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느껴질 만큼 특별한 의미를 붙여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세기의 마지막 노벨문학상이 독일작가, 그것도 대표적인 반나치즘 작가에게 돌아갔다는 것은 서구가 20세기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나치와 유태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서구역사에 씻지 못할 상처와 후유증, 그리고 죄의식을 남긴 것이다.

영화계에서도 올해는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제작들이 많은 조명을 받았고, 노벨문학상도 올해는 유례없이 빠르고 쉽게 수상자가 결정났다. 스웨덴 한림원은 원래 매년 10월 두 번째 목요일에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해왔으나 올해는 그보다 2주 앞서 확정발표했으며, 발표시간 또한 예년보다 1시간 정도 빨랐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이같은 빠른 발표는 수상자선정을 둘러싼 심사위원들간의 논란이 없이 만장일치로 귄터 그라스를 선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귄터 그라스는 2차대전 이후에 부상한 전후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 그는 하인리히 뵐과 함께 나치시대를 작품 속에 기록해왔으며 59년에 발표한 데뷔작 <양철북>은 독일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라스는 1972년 하인리히 뵐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부터 30년 가까이 줄곧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어와 이번 수상은 때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의 문학적 위업은 <양철북>을 비롯한 50,60년대의 작품들에서 절정에 달했고, 70년대 이후에는 작가활동보다는 정치적인 행보에 더 무게가 실려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4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을 거론하면서 그라스에게 수상을 안겨준 것은 2000년 1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홀로코스트 국제회의와도 연관이 깊어보인다. 2차 대전 때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 별로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던 스웨덴 정부는 나치즘의 후유증에 초점을 맞춘 국제회의를 열며, 여기에는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등 49개국의 정상들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스웨덴의 한 여론조사에서 학생의 66%가 홀로코스트가 실제로 행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것도 이 대회를 개최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소설 <양철북>이 독일 문학의 새 물꼬를 트며 60년대 유럽사회의 변혁물결에 영향을 미쳤다면, 폴커 쉴뢴도르프 감독이 만든 영화 <양철북>은 뉴저먼시네마 운동의 한 산물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성장을 멈춘 11살의 소년배우가 주인공 오스카로 등장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양철북>은 어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관찰하면서 성장을 멈추고 영원히 3살에 머무르기로 한 오스카를 통해 나치즘의 대두를 은유, 비판한 작품이다. 비명을 지르면 주변의 유리창이 깨지는 능력을 지닌 오스카는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일을 만났을 때 양철북을 두들겨댐으로써 세상에 저항한다. 오스카의 피터팬 신드롬은 바로 성인들이 만들어낸 공포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양철북>은 2권짜리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는데 97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아동 포르노그래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초현실적이면서 어두운 분위기와 오스카의 기괴한 행동들, 그리고 블랙 유머가 독특하게 혼합된 영화이다.

그라스는 문학작품을 통해 나치즘의 후유증을 비판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적 성장을 대표적인 후유증의 하나로 거론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90년 독일이 통일을 이루었을 때도 통렬히 비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에 따르면 독일은 위험한 국가이므로 통일되어서는 안된다. 홀로코스트는 독일적 특성이 빚어낸 것이며 그러므로 분단상태로 남아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된 독일은 역사에 고통,파괴, 패배와 피난민, 수백만의 죽음과 범죄를 낳았으며 이는 우리에게 영원한 짐"이라고 질타했다.

리버럴한 양심을 대변하는 그라스는 늘 좌파적인 입장에 서서 정치적인 문제들에 개입해왔다.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그는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야만적이고 동물적이었던 적은 없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제도에 승리한 이후 그 야만성은 더해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60년대 이후 평화운동과 환경운동에 적극 개입해온 그는 독일정부의 보수적인 정책, 그리고 독일의 인종차별 등에 대해 "민주주의로 포장된 야만주의"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보수주의자와 극좌파 양쪽에서 모두 불편하게 생각하는 지식인이자 행동가이다.

영화 <양철북>이 뉴저먼시네마의 정신을 보여주고,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지는 80년대 변화의 시대를 열었다면 99년 그라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21세기를 앞두고 살아있는 비판정신과 행동, 그리고 지식인적인 양심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막연한 대중주의의 바람에 휩쓸려 갈피를 못잡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라스가 보여준 비판적 양심과 소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라스는 수상 후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의 젊은 작가들이 이야기를 엮어가는 내러티브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평가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 반대"라고 옹호했지만 젊은 작가들이 정치적인 투신이란 점에선 미약하다는 점은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작가는 문학적인 성취도 이룩해야 하지만 또한 정치적인 개입을 통해 시민의 의무도 다해야 한다. 젊은 작가들이 이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21세기의 장미빛 꿈은 실종된 채 갈수록 어수선해지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양심과 비판, 그리고 소신있는 사람과 행동이 더욱 절실해진다.

추신: 20세기 마지막 노벨상 수상자에 대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는 반나치작가의 수상을 적극 환영했으며 독일에서는 이를 전후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신호탄으로 반기는 분위기라고 한다. 독일의 유력지 '디 벨트'는 독일작가의 수상에는 용서의 뜻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그라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나는 사회민주당파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는 가치가 없으며 비사회적인 민주주의 또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록 40년 전에 쓰여졌고, 영화도 20년이 되었지만 <양철북>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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