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지막한 로고 … 과시욕 강한 중국인에 통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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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1일 중국 상하이의 중심가 푸둥 지구에 위치한 바바이반(八百伴)백화점. 루이뷔통·샤넬 등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이곳에서 유난히 손님이 붐비는 매장이 있었다. 지난달 이 백화점에서 여성복 매출 1위를 차지한 이랜드의 티니위니다. 중국 이랜드는 이 백화점에만 스코필드·프리치 등 13개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이 백화점에서 단일 업체가 낸 매장으론 가장 많다.

 올 상반기 상하이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외국계 기업. 이랜드(중국명 衣戀·이롄)가 중국 시장에서 패션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중국 전체에서 1조원 매출을 올리는 의류 업체는 다섯 곳도 되지 않는다. 최종양 중국 이랜드 대표는 “중국인들이 패션에 눈을 뜨기 전부터 진출해 시장을 다져나간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랜드가 상하이에 중국 법인을 세운 건 1994년이다. 생산기지 구축을 위한 것이었지만, 장기적으론 중국 패션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93년 베이징대 특강을 다녀 온 박성수 이랜드 회장은 임직원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교수고 학생이고 모두 인민복만 입고 있다. 이들이 패션에 눈을 뜨면 엄청난 시장이 열린다.” 인사고과에서 A를 받은 직원만 중국 법인에 보냈다. 2, 3년 지내다 오는 게 아니었다. “아예 중국 사람이 돼라”는 것이 회사의 지시였다. 현재 중국 법인엔 7년 이상 근무한 한국 직원이 스무 명이 넘는다.

 진출을 일찍 한 덕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다. 96년부터 가두 매장을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를 경험 삼아 ‘백화점 진출’로 방향을 틀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인들의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그간 쌓은 노하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3년만 해도 130여 곳이었던 매장이 올 연말 3700여 곳으로 늘어난다.

 디자인도 철저히 현지화했다. 티니위니 중국 매장에는 가슴 한복판에 곰 모양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옷(사진)이 유난히 많았다. 로고가 왼쪽 가슴에 작게 들어가는 한국 제품과는 딴판이었다. 중국 이랜드 김만수 경영기획본부장은 “브랜드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중국인의 성향을 감안한 디자인”이라며 “이 매장 제품 중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은 30%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현지 트렌드 분석이 먼저다. 중국 본사의 ‘패션 연구소’는 매주 상하이 번화가에서 현지인 800~1000명의 사진을 찍는다. 이들의 옷차림을 분석해 ‘현지 트렌드 리포트’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본사 디자인팀은 중국용 의류를 따로 디자인한다. 컴퓨터로 디자인 샘플을 보내면 중국 영업·판매·기획 조직이 현지에서 인기를 끌 만한 디자인을 골라낸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매장을 내며 브랜드를 고급화시킨 전략도 적중했다. 한국에서 이랜드 계열 브랜드가 대부분 중저가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바이반백화점에서 팔리는 로엠 모직 코트는 2700위안(약 47만원). 한국 로엠의 코트 가격과 비교하면 50% 이상 비싸다. 최종양 대표는 “향후 중국의 소비 수준이 높아질 것에 대비해 미리 고급 브랜드로 공략한 것”이라며 “2020년까지 10조원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상하이=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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