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는 지금 … “취재고 뭐고 빨리 나가, 언제 쏠지 모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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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지 이틀이 지난 25일 오후 연평도 주민들이 계속된 불안감으로 배를 이용해 섬을 떠나고 있다. [연평도=뉴시스]


그 집 앞에는 분홍색 자전거(*어린이용임)가 쓰러져 있었다. 손영호. 안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뒷부분은 타버렸고 바퀴 위로는 깨진 유리조각이 쌓여 있었다. 아이가 엉덩이를 들썩이던 자전거 옆으로 세 대가 더 쓰러져 있었다. 자전거마다 아이의 아빠와 형, 엄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학교로 일터로 바다로, 가족의 단란함을 실어 날랐을 8개 바퀴는 그슬리고 찢겼다. 25일 오후 2시30분, 북한 포격으로 폐허가 된 연평면 남부리는 죽어있었다.

 25일 인천에서 연평도로 가는 뱃길이 열렸다. 북한의 무차별 폭격 이틀만이다. 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주민들은 속속 빠져나갔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이향란(64·여)씨는 입을 다물었다.

 마을을 찬찬히 돌아봤다. 이미 대부분의 주민들이 섬을 떠난 터였다. 간혹 만나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짐을 싸고 있었다. 인천으로 대피했다가 마당에 내놓은 배추가 걱정돼 섬을 찾은 김귀진(64)씨를 만났다. “자식 집에 가야지. 무서워. 다들 나갈 거야.”

 마을 입구에는 2층 양옥집이 있었다. 인기척이 없었다. 모든 유리창이 깨졌고 자물쇠와 달린 문짝은 떨어져나갔다. 모기장은 찢겨졌고 형광등은 부서졌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방 안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다. 대낮인데도 으스스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았던 곳이었다.

 여관이며 커피숍, 주택이 죽 늘어선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송림커피숍 벽면에는 갈매기 떼가 모여든 평화로운 포구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옆의 창틀은 까맣게 불탔다. 그 앞 가정집의 부엌도 보였다. 싱크대 위의 설거지감 위로 깨진 유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져있었다. 왕눈이커피숍 간판은 부서진 채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부엌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봤다. 테이블 위에 커피가 남은 잔과 재떨이가 있었다. 누군가 담소를 나누던 흔적 그대로였다. 북한이 폭격한 것은 빨래를 털고 커피를 마시던 일상이었다.

 밟는 걸음마다 유리조각이었다.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재가 날아올랐다. 까맣게 불타버린 집들에서 아직 냄새가 났다. 지나가던 이가 말했다. “하늘 좀 보세요. 무서워서 살겠습니까.”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적막했다. 불에 타 끊긴 전깃줄이 전신주에 대롱대롱 매달려 위태로웠다.

 섬에도 풀은 자랐다. 하지만 폭격은 어느 것도 성하게 하지 않았다. 영림수산 뒤 2층 양옥집 대문 옆에는 아담한 나무가 있었다. 흡사 바비큐처럼 통째로 까맣게 그슬렸다. 가지를 만지자 힘없이 부러졌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봤다. 그대로 검은 가루가 됐다.

 가정집 텃밭에서 기르던 무며 고추도 바싹 말랐다. 만지면 과자처럼 부스러졌다. “저 작은 것들이 열기를 견딜 수 있었겠나. 쯧쯧, 여긴 다 폐허가 됐어. 이제 어떻게 살아….” 유류를 팔던 가게가 몽땅 타 버렸다는 김응석(34)씨는 말끝을 흐렸다.

 마을 곳곳에는 대피소가 있었다. 연평 노인정 앞 대피소 앞의 컵라면 쓰레기가 폭격 당일의 상황을 보여줬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봤다. 계단을 내려가자 떨어진 문짝이 보였다. 안에는 얇은 담요 몇 장만 남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마을 주민들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죽은 마을이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마을은 더 적막해졌다. 선착장으로 가던 주민이 외쳤다. “취재고 뭐고 다들 여기서 빨리 나가요. 이제 곧 오후 4시 넘어서 배가 뜰 거야. 그거 타고 나가야지. 북한이 또 언제 쏠지 알아.” 면사무소에서는 “인천으로 대피하실 주민들은 지금 선착장으로 가라”는 방송도 계속 흘러나왔다. 전기를 복구하는 KT 직원들은 말을 아꼈다. 얼마나 진행됐느냐 물었더니 “지금 일분일초가 급하니 말을 걸지 말아달라”는 숨가쁜 말이 돌아왔다.

임주리 기자


 “연평도에 사는 사람은 모두 애국자다. 우리가 연평도에 살기 때문에 북한군이 그동안 공격을 못한 것이다.” 연평도 어민회장 신승원(70)씨 는 폭격 사흘째인 이날 폐허가 된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주민들을 다독였다. “나도 육지로 떠날 준비를 했다. 집은 무사하지만 언제 또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며 남아 있겠다고 결정한 주민들을 위로했다. 신씨는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육지로 떠난 어부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연평도 상황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연평도에서 꽃게잡이를 하는 김정희(45)씨는 “죽어도 연평도에서 죽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차량 두 대를 이용해 부두와 마을을 오가는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현장 취재를 온 기자들도 이씨의 차를 수시로 얻어 탔다. 김씨는 “언론에서 연평도의 상황을 그대로 전달해야 정부가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당부했다.

연평도=임주리·신진호·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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