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LH, 사업 조정 지지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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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잠잠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빚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120조원의 빚을 지고 있는 LH가 내년 초까지 경영상태를 정상화하겠다고 25일 발표하면서다. 건설업계나 LH 안팎에서는 400여 곳의 사업장 구조조정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해한다.

 ◆팔아야 할 부동산은 쌓였는데=LH는 비상경영체제 돌입 100일이 지난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와 협의해 재무개선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보유자산 매각, 사업성 제고 등을 통해 내년 초까지 비상경영체제를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보유자산 매각, 사업 조정, 유동성 관리, 조직·인사 혁신 등에 나선 결과 토지와 주택의 판매가 늘고 자금조달 방식을 다변화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비상경영 선언 이전보다 토지 매각 실적이 하루 평균 22필지에서 34필지로 54.5% 늘었고, 미분양 주택 판매도 53.5% 증가했다는 것이다. LH는 또 토지수익연계채권 등을 발행해 4조3000억원가량을 조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와 금융업계는 물론 LH 직원들까지 “뜬금없는 얘기고,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비상경영 기간의 성과가 물량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것이다. 10월 말 보유한 토지는 22조3000여억원어치이고, 미분양주택은 2조8000여억원이나 된다. 토지의 경우 비상경영 이후 하루 평균 329억원어치씩 팔고 있다지만 이런 속도로 미매각 토지를 모두 팔려면 2년이 걸린다. 전국에 있는 14개 사옥 매각을 추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고작 2건밖에 팔지 못했다.

 채권 발행도 하반기 이후 중단됐다. 공공사업으로 인한 LH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주는 내용의 LH공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면서 금융회사들이 채권 인수를 꺼리기 때문이다. LH 재무담당자가 “요즘 하루하루 현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자금난은 심각하다.

 ◆사업 구조조정 걸림돌은=이지송 사장은 LH의 정상화를 위해선 전국 414개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사장은 “곪아 터지려는 환부를 빨리 도려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럼에도 사업구조조정은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고 있다. LH는 9월께 사업 구조조정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네 차례 연기됐고 올해 중 발표는 물 건너갔다.

 정부·자치단체·주민·정치권과의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를 사업구조조정 대상에서 빼 달라며 온갖 압력을 가한다. 지역구 사업장이 퇴출 리스트에 오른 한나라당 모 의원은 최근 “LH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이겠다”고 이 사장을 압박했고, 민주당 모 의원도 “지역 개발사업을 중단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압력도 거세다. 최근 LH로부터 택지개발지구 내 U-City(유비쿼터스 도시) 사업취소를 통보받은 경기도 내 각 지자체들은 “LH의 취소 통보를 납득할 수 없으며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단국대 부동산학과 김호철 교수는 “공기업의 빚은 온 국민의 빚”이라며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LH가 구조조정을 빨리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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